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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Sep 15. 2022

나는 내가 정말 좋아!

실체 있는 누군가와 자리를 다투는 게 지난하고, 지는 삶이 지겹다. 경쟁을 얼마나 힘들어하냐 하면, 술자리에서 벌이는 게임조차 버거울 정도다. 보드게임을 즐기는 회사 동료가 점심시간마다 트럼프 카드를 차르륵 흔들며 내게 다가와 “같이 하실래요?” 물어볼 때마다 이미 패배를 예감한 내 심장은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한다. 나는 나와 싸우는 게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저 어제의 나만 이기면 족하다.


공을 골대에 얼마만큼 많이 넣는지 가리는 운동을 취미로 삼은 주제에 ‘경쟁이 무섭다’니 듣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초반에는 축구를 일종의 체력단련 수단으로 여겼다. 경쟁과 쟁취의 운동이라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모든 건 그저 내 사정일 뿐이고, 보통 축구하는 사람들은 게임하기 위해 모인다. 축구교실에 가도, FC 훈련에서도, 친구들과의 공놀이에서도 꼭 마지막에는 각자 다른 색 조끼를 나누어 입고 상대를 마주 보며 필드 안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곤 한다.


▲  경기에 임하기 위해 오른쪽 공격 자리에 섰다. 이날은 노란색 조끼를 입었다.


보통 초보들은 공만 보고 달리기에 모두가 한 공간에 우르르 모여 서로의 발을 차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난다. 초반에는 그들의 호기로움에 겁을 먹고 혼자 멀찍이 떨어졌다. 언젠가 뒷걸음질 치는 내게 코치님이 “숨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라고 소리쳤다. 그 말이 딱 맞다. 나는 필드 안에서도 열심히 도망쳤다. 기가 막히게 잘 숨어 다녔는데 어떻게 보셨대. 


패스도 마찬가지였다. 날아오는 공을 잘 잡은 뒤에 우리 편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달려드는 수비만 보면 사색이 되어 받자마자 내팽개쳤다. 가뜩이나 기초도 부족한데 아무렇게나 던지니 공이 계속 상대편에게 넘어가거나 라인 밖으로 빠져나갔고, 이후로는 더 자신이 없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욕심도 못 내서, 빈자리를 찾아 달려 나가면서도 차마 내 편에게 “여기, 여기!”라고 소리쳐 알리지 못하고 조용히 어깨춤에 손을 들어 올렸다가 슬쩍 내렸다. 이런 내 모습을 매의 눈으로 집어내는 코치님은 늘 “자신감 있게, 자신감 있게 해요!”라고 소리 지르고, 나는 속으로 ‘아, 제발 코치님. 내게 관심 좀 가지지 마요’라며 울었다.


경기장에서 좀처럼 주눅 들지 않는 요다에게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대학 축구 동아리 출신인 그는 “저는 지는 경기를 하도 많이 해봐서 그런지 별로 안 떨리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다. 지려고, 질 줄 알면서도 경기에 임한다니. 내가 감히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를 더듬어보느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매번 경쟁 앞에서 꽁지 빠지게 도망만 다니던 나와 달리 요다는 자신의 필드에서 나름의 싸움을 벌이며 패배마저 기꺼이 감내하는 단단한 친구였다.


▲  친선 경기 한 장면. 유니폼을 입은 쪽이 우리 팀이다.


최근에 한 친선 경기에서 우리 팀이 큰 숫자로 졌다. 각 10분씩 총 6경기를 진행했는데, 경기 중반까지 한 골도 터지지 않고 계속 먹혔다. 역력한 패배의 기운에 팀의 텐션도 한껏 낮아진 상황. 그때 입술이 새파래질 때까지 필드 안을 종횡무진 누비다가 이제 막 교체되어 벤치에서 쉬고 있던 부주장 참지가 옆 친구에게 무언가를 제안했다. 마주 선 둘은 다음 문장을 힘주어 외치며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손뼉을 마주 쳤다.


“나.는.내.가.정.말.좋.아!”


그 외침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크게 각인되어 있다. 드리운 패배 앞에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자세가, 지든 말든 나는 여전히 내가 좋다는 담대함이 ‘우리는 비록 이기지 못했지만 순순히 상대가 원하는 모습대로 져주지는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였다.


그간 경쟁을 ‘이기는 것’과 ‘지는 것’만 있는 세계라고 상상했다. 이기면 승리자, 지면 패배자. 하지만 그 사이에는 촘촘하게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지금의 승패가 모든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또 어떤 경쟁은 이기고 지는 것 자체에 별 의미가 없다. 심지어 지금 지는 게 다음을 위한 전화위복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결과보다는 과정과 내용을 곱씹어야 하고, 그러려면 되도록 잘 져야 한다.


▲  친선 경기를 앞두고 필드에 들어가기 직전, 팀 코치님이 작전판을 들고 오늘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축구를 겨우 ‘체력단련 수단’으로만 삼기에는 너무 아까운 운동임을 안다. 축구는 ‘멋지게 이기는 법’뿐 아니라 ‘안전하게 지는 법’마저 알려주는 스포츠다. 사회에서는 물러서는 순간 나를 한껏 크게 물어 아예 필드 밖으로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상황과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반면에 축구에서는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오늘은 져도 괜찮다. 이기면 좋지만 지면 또 어때. 우리는 이렇게 즐겁고,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데. 그러니 그 어떤 패배도 나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내 축구 친구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도 이들처럼 짙은 패색 앞에 주눅은커녕 “나는 내가 정말 좋아!” 외치는 기백 넘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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