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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Nov 29. 2023

다시 시작

업무를 뒤죽박죽 수행하고, 자꾸 무언가를 빠트리고, 판단이 제대로 안 섰다. 간단한 돈 계산도 되지 않을 때쯤, 회사에서 신뢰를 잃는 게 느껴졌고 ‘나의 어딘가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혹시 ADHD 같은 게 아닐까? 결국 3년 전 갔던 정신과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의사에게 요즘의 내 상황들을 나열했을 때 그는 곧바로 “우울증이네요”라고 대답했다. 우울증은 단기간에 생기지 않는다. 아마 3년 전 남편상을 당했을 때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고 울었어야 하는데, 내 성향상 애도를 안쪽으로 치워두고 지금의 생활에 집중했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제 한계가 온 거라고,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질 정도로 자신이 지친 거라고. 몸이 아픈 것도 축구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내 모든 행동들이 이해되면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내게 무슨 짓을 하고 살던 것일까.


자꾸만 집 밖으로 나돌아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축구에 열중했던 이유가 단순히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많이 울었겠지만 나에게는 더 많이 울어야 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단다. 되물었다. “전 우울하지 않은데요?” “우울을 느끼기도 전에 생각을 다른 데로 치워버린 건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애도의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한껏 지난해졌다. 3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한 치도 자라지 못했구나. 그만큼 당신이 내게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이야기겠지.


원인을 알았으니 고칠 일만 남았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나기로 했다. 약을 얼마나 먹어야 하냐는 내 말에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봐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감기약도 잘 안 먹는 내가 1년 동안 같은 약을 먹어야 하다니. 그동안 주워들은 말에 따르면 우울증 약을 먹다가 안 먹으면 상태가 더 나빠진다고 했다. 우선은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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