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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미치도록 미워질 때

by 아나스타시아

가난을 겪어봤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돈에 강박이 생긴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A 사이트와 B 사이트, C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에잇, 그냥 사지 말자’라며 창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얼마 전에는 평소에 들고 다니는 짐이 너무 많이 늘어나서 가벼운 천 재질의 검은 가방을 하나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몇 달째 관련 물건을 검색만 했다. 5만 원? 너무 비싸. 싼 거, 더 싼 거. 1만 8000원짜리까지 찾았으나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자기 전에 캐시워크를 켜 1원, 2원 모으고, 아침에 일어나면 휴대전화 앱들을 켜 ‘출석체크’를 한다. 이런저런 일에 치여 미처 교환권을 물건으로 바꾸지 못하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내가 30일 내내 아침마다 접속해서 받은 보상인데! 뭐, 어쩌겠나. 못 챙긴 내 잘못인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냥 휴대전화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간다. 지나간 건 잊어야지. 걸으면서 캐시워크 포인트나 모아야겠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쌓아 겨우 얻는 것들은 소략하다. 스타벅스 커피, 편의점 여행 티슈, 미쯔 과자. 내 한 달 노력의 결과물들이다. 너무 미미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한 것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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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큰 고민 없이 돈을 쓰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남에게 돈을 빌려줄 때다. 엄마가 몇백만 원씩 달라고 하면 그냥 통장에 있는 돈을 털어서 쥐여주고, 알아서 돌려줄 때까지 받을 생각을 안 한다. 머릿속으로 그 생각을 치워버리는 것이다. 언제 받나 계속 생각한다고 해서 돈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마음앓이는 하기 싫으니까. 줄 때 되면 주겠지.


얼마 전에는 친구가 메신저로 10만 원을 보냈다. 이거 무슨 돈이냐 물으니 “자기가 빌려줘놓고도 왜 몰라... 지은 씨가 몇 년 전에 빌려준 돈인데, 형편이 좀 나아져서 일부라도 갚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머지도 형편 되는 대로 갚겠다고 너무 적어 미안하다는 그에게 “근데 혹시 내가 얼마 빌려줬는데요?”라고 묻지 못했다. 이런 무심함 때문에 어딘가에 못 받은 돈도 좀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무언가를 사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냥 인터넷 서핑하다가 엄마 생각이 나면 일단 결제 버튼을 누른다. 내게 남편이 있어, 자식이 있어, 사치를 해. 어차피 내 월급은 나 혼자 사는 데 충분하니 엄마 맛있는 거나 먹이자,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쓰는 1만 8000원은 아까워서 검색창을 몇 번이나 들락나락거리면서 남의 부탁에는 몇백만 원씩 척척 주는 사람인 것이다. 나에 대한 나의 무정함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런 나의 태도가 엄마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걸까. 최근에 엄마가 투자에 실패했고, 1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가용할 수 있는 비용을 최대로 끌어모아달라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담보 대출, 보험 약관 대출, 집 담보 추가 대출, 주식 매매 등으로 7000만 원을 만들어 입금시켰다. 엄마는 말했다. “1000만 원만 더 어떻게 안 될까?” 그 말에 다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찌저찌 350만 원을 만들었고, 다시 돈을 부쳤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최대치를 보내고도 나머지 갚지 못한 돈이 걱정되어 잠을 설쳤다. 엄마는 늦어도 2년 안에는 돌려주겠다고 했다.


출퇴근마다 듣는 팟캐스트에서 누군가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저희 할머니 입맛이 너무 없어서 밥을 안 드세요. 무언가 건강하게 드실 만한 요리 없을까요?” 요리를 가르쳐달라는 말에 패널들은 “직접 하는 것도 좋지만 OOO 요리연구가의 영양밥 보내드리세요. 저희 아버지가 ‘거 하나 더 보내봐라’고 말했던 유일한 음식이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곧 포털 사이트에 제품 이름을 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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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팩 세트에 4만 원. 평소 같으면 보자마자 물건을 클릭하고 엄마 집 주소를 입력했을 것이다. 그날은 그럴 수 없었다. 내 모든 돈을 엄마에게 끌어다 줬고, 나에게는 내 월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다음 달 카드빚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나는 왜 내 빚은 생각도 안 하고 일단 엄마부터 챙겼을까.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17년을 쉬지 않고 일했는데 4만 원짜리 제품 하나 못 사는 내가 한심하고, 빚을 내서라도 투자해야 한다고 믿는 엄마의 불안이 미웠다. 나는 조용히 그 사이트 창을 닫았다.


친구는 말했다. 엄마의 빚은 엄마 건데 왜 너와 네 동생이 나누어 가지느냐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나 또한 잘나가는 연예인이 부모와 연을 끊는 걸 보고 ‘왜 저렇게 될 때까지 끌려다녔나. 진작에 차단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워한 적도 있다. 겪어보니 그게 아니더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망하는 걸 지켜보는 건 마치 내가 망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함께 짊어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요즘에는 사랑하는 만큼 미워할 수 있음을 깨닫는 중이다. 주 6일 일하는 동생은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에 다닐 만한 알바를 구했다고 한다. 지금 나는 웃으면서 엄마를 마주하지 못하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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