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by 아나스타시아

다이어트 중이다. 두어 달간 운동과 식단조절을 꽤 꾸준히 했고, 몸무게가 3킬로그램쯤 빠졌다. 그냥 숫자만 달라진 게 아니라, 눈바디로도 변화가 드러났다. 나잇살이라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뱃살도 어느 정도 들어갔다. 타이트해서 불편했던 바지도 이제 넉넉하게 맞는다. 남들 눈에도 내 몸이 달라졌는지 회사 동료는 내게 “옆에서 보니 몸통이 좀 작아지신 것 같다”고 했다. 역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게 최고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모임에서 나는 엄마에게 나 어디 달라진 게 없냐고 물었다. 내 기대와 달리 엄마는 한번에 알아차리진 못했다.


“나 살 빠졌는데, 티가 안 나나?”

“그래서 옷이 그렇게 큰가? 품이 그 정도로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입고 있던 옷은 재작년에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니트였다. 노란색이 잘 받는 편이라 자주 입고 다녔다. 엄마도 이 옷을 사주었을 때 꽤 흡족해했기에, 이날 일부러 입고 엄마 집에 방문했다. 그런데 2년간 너무 자주 입어서 옷이 좀 늘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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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오랜만에 엄마와 사우나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엄마는 전날 내게 전화해 요즘 사우나가 너무 좋다며 나보고 함께 가자고 했다. 그래, 난 사우나 별로 안 좋아하지만 효도하는 셈 치고 같이 가자.


우리는 대충 몸을 씻고 얼른 뜨거운 사우나실에서 몸을 녹였다. 노곤해진 몸으로 함께 몸을 말렸고, 이내 사우나실을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엄마가 열심히 옷을 챙겨 입고 있던 나를 보더니 한마디를 건네었다.

“그 옷이 왜 그렇게 크지?”

“살 빠져서 그런가 보지.”

“니트 어깨 부분은 괜찮은데... 배쪽이 좀 늘어난 건가?”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옷이 좀 늘어났나? 다시 한번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넘기며 밖으로 나왔다. 그때 엄마가 내 뒤에 대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그 가방은 뭐야? 왜 그렇게 작은 가방을 메고 다녀?”


그 말이 내 안의 어떠한 부분을 건드렸고, 나는 엄마에게 성질을 부렸다.


“아니, 왜 자꾸 이것저것 지적하는 거예요. 내가 벗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늘 이런 식이다. 잘 참다가 기어코 한마디 던지고, 엄마는 꼬리를 내리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패턴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분명 효도하겠답시고 사우나에 같이 간 거였는데 공공장소에서 엄마에게 성질부리는 딸이 되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껏 지쳐서 침대 위로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자고 일어난 뒤 들여다본 휴대전화에는 엄마의 ‘미안하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예쁜 옷 못 사주면서 잔소리했네. 못 보던 핸드백이라 얘기한 건데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해.”


그 문자를 보는데 다시 한번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예쁜 옷 안 사준다고 화낸 게 아닌데 엄마는 왜 늘 그쪽에 포인트를 맞출까. 내가 너희한테 못 해줘서, 보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사달라고 한 적도 없고 보태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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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에게 잘해줘야지’ 다짐해도 늘 실패할까.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찜찜함이 남는 것일까. 왜 나는 엄마 집에만 다녀오면 한껏 지쳐 잠들어버리는 것일까.


이는 엄마의 불안이 내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내가 후줄근한 옷을 입고 다니느라 어딘가에서 돈 없다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엄마. 그날 엄마는 동생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얘가 전화를 안 받을 때마다 불안해”라고 말했다. 반면에 나는 ‘얘는 지금 해가 중천인데 자느라 전화도 안 받고 있나 보네’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말이 맞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간 애에게 늦잠 자는 거 말고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동생에게 사고가 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상을 0.1초간 했다.


어쩌면 내 불안 지수가 꽤 높은 이유가 엄마에게서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불안과 걱정은 옷차림에 대해 한마디 얹는 말과 눈빛에, 집에 간다는 내게 바리바리 싸주는 반찬더미에 겹겹이 싸여 있다. 내가 자꾸 엄마에게 거리를 두려 노력하는 건 그 불안과 걱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일 것이다. 엄마의 걱정이 커질수록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 가족이 만날 때면 늘 지쳐서 곯아떨어지는 내 몸이 그걸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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