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50킬로그램을 넘긴 적이 없다. 키는 작지만 타고난 통뼈라 실제 살은 더 적었을 것이다. 일부러 음식을 조절한 건 아니었고, 성향상 살이 찌기가 쉽지 않았다. 밥 먹는 걸 귀찮아해서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한 알 먹으면 열흘간 배고픔이 없어진다는 알약이 얼른 개발되기를 바랐다.
최근 3년 사이에 8킬로그램 쪘다는 말을 들으면 다들 놀라곤 했는데, 정작 나는 새삼스럽지 않았다. 건강보다는 그냥 눈앞에 보이는 걸 먹었으니까. 한번은 주말 내내 집에 있던 호박엿만 먹다가 탈이 나 병원에서 배탈 약을 처방받은 적도 있었다. 전 직장에서는 스트레스와 우울이 심해서 오후마다 근처 편의점에서 와그작와그작 씹을 수 있는 봉지과자를 사 먹었다.
아무렇게나 산다 해서 아무렇게나 되고 싶은 건 아니어서, 내 안에 자괴감은 차곡차곡 쌓이더라. 과자를 먹을 때는 잠깐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빈 봉지 과자를 볼 때면 나를 아끼지 않는 나에게 짜증이 났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영양 따위 생각 안 하고 아무 음식이나 마구 먹는데다가 기초대사량은 점점 떨어지니 살은 빠르게 쪘다. 그때쯤에는 뛸 때마다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 같고, 2030 때 선명했던 복근(살이 워낙 없어서 조금만 운동해도 복근이 생겼다)은 뱃살로 인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우울 진단의 좋은 점은, 이 모든 걸 내가 아닌 우울 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먹을 걸 자제 못하지? 왜 아무거나 먹고 후회하지? 이렇게 살이 찔 동안 난 뭘 한 거지? 이런 상태에 스트레스받으면서도 왜 개선하지 못하지?’ 이렇게 생각하면 문제 해결은커녕 단것에 끌려가는 내게 자괴감만 쌓인다. 지금은 모든 것을 내가 아닌 우울 탓을 할 수 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우울 때문이야. 그런 면에서 우울에도 장점이 있다.
과거의 나는 스트레스에 진 나, 고작 과자 같은 것으로 현 상황을 회피하려는 나에게 화가 났고, 상황을 콘트롤하지 못하는 나, 식탐을 자제하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했다면 지금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던 나의 위치와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 나’가 아닌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 구조적 상황’을 주로 생각한달까. 나를 내 안에서 끄집어내 하늘 위에서 조감하는 기분이랄까. 위에서는 그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내 잘못이 아니구나,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와 같이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 덕에 그 상황에 있던 나를 구원해 다른 곳에 옮겨놓을 수 있었다. 회사를 옮겼으며, 풋살에 대한 집착(못하는 나에 대한 실망감과 집착)을 내려놓고 필라테스와 자전거, 러닝 등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3킬로그램이 빠지고 체력이 조금 늘었다. 집에 가만히 널부러져 있어도 자괴감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물론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진 않으니 여전히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트레스받는다. 다만 스스로를 비난하는 생각의 패턴만은 끊을 줄 알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나와 조금씩 화해하고 있다. 내가 나와 절친이 된다면 우울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