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타는 고양이의 행동
‘고양이와 함께 산다’고 고백하면, 고양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로 비슷한 질문을 건넨다. ‘고양이는 눈이 무섭지 않아요?’, ‘안 할퀴어요?’, ‘주인 알아봐요?’ 같은 것들. 인터넷 상에서는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문구가 유행하고, 고양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을 팔로워하는 이들이 수십만을 차지해도, 역시 고양이는 소수파구나 싶다.
대부분의 질문들에는 웃으면서 대답해준다. 아직 고양이를 접하지 못한 친구에게 신세계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찬양을 시작한다. 마치 내가 고양이교 전도사라도 된 심정이다. 이때만큼은 낯모르는 이 앞에서 피켓을 들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이들이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물론 내 찬양을 듣고 이내 고양이의 매력을 발견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아마 내가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피켓을 못 본 척 넘기고 지나가는 것과 비슷하리라.
다만 ‘고양이는 외로움 잘 안 타죠?’라는 물음에는 정색하고 대답한다.
“아뇨. 고양이도 외로움 타요.”
단호하게 구는 이유는 딱 하나다. 본인이 외롭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데려오는 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본인의 욕구를 충족시킨 뒤에는 동물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를 자주 접했다. 그들은 ‘고양이는 외로움 안 타니까’, ‘원래 고양이는 하루 20시간씩 자잖아’라며 반려동물이 매일 집에 혼자 있는 상황을 정당화한다.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편견은 아마 개와 표현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어느 농담에서 고양이 반려인이 강아지 있는 집에 갔다가 “개는 사생활이 없어?”라며 깜짝 놀랐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이 농담은 개와 고양이의 극명하게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 개는 모든 생각의 레이더가 주인을 향해 있다면, 고양이는 반려인과의 생활만큼이나 본인의 안락함도 중요한 듯하다.
하지만 분명 고양이도 반려인을 그리워하고, 체온을 기대한다. 고양이 입장을 생각해보면, 녀석에게 친구는 당신밖에 없지 않은가. 당신이 없으면 그 공백을 채울 존재는 없다. 고양이를 반려하는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며칠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녀석들은 반려인 곁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 계속 쫓아다니며 울고, 좁은 무릎 위에 서로 비집고 올라오거나, 등에 슬며시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다. 하루이틀 정도는 이 껌딱지 놀이를 지속해야 겨우 안정을 찾는다.
큰 수술을 마치고 수 일 입원한 뒤에 집에 돌아온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서든 내게 붙어 있으려 했다. 내가 조금만 무릎을 굽히면 어느새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앉아버렸다. 그렇게 겨우 무릎을 차지한 녀석은 그간 밀렸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낯선 환경, 모르는 사람과 수많은 소음, 생전 처음 맡는 냄새들이 뒤엉킨 병원에서 리아는 나만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외로움과 고단함을 알 것만 같아서 함부로 일어날 수 없었다.
무릎에 누워 잠이 든 리아의 몸을 가만가만 살펴보았다. 네 다리는 링겔 맞은 자국으로 퉁퉁 부어 있었고, 수술하기 위해 함부로 들이민 바리깡 덕분에 등과 배는 털이 벗겨지고 살갗이 드러났다. 배와 등에 새겨진 칼자국들이 리아가 얼마나 큰 수술을 이겨냈는지 알려주었다. 이 모든 고통과 아픔을 온전히 혼자 겪게 했구나. 녀석의 잠이 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참 무릎을 차지했던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잠에 취한 녀석은 다시 무릎 위로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한쪽 팔을 뻗어 내 발등 위에 올려두었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안정이 된다는 듯이. 너에게는 내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발등으로 전해지는 서로의 체온이 참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