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주는 사이

by 아나스타시아


엄마가 집에서 반려인 병간호와 살림을 도와주기로 한 지 한 달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암 수술 후 엄마와 한동안 동거할 예정이라는 내 말을 들은

모 작가님은 진심으로 충고했다.

엄마랑 사는 거 힘들 거라고. 그래도 절대 싸우지 말라고,

큰일 앞두고 예민해져서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한 달 반을 함께했다.


엄마와의 하루는 엄마의 요청과 나의 노동이 뒤섞여 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집안을 쓸고 닦았고,

엄마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을 모으고 모았다가

퇴근한 내게 전부 쏟아내고는 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온갖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부엌에 있는 이것 좀 수리해줘, 작은 방 전등 좀 갈아줘,

거실에 도배 좀 하자, 인터넷에서 바나나 좀 사다줘,

커피가 다 떨어졌어. 오는 길에 사다줘,

여기 물품 중에 쓰는 것과 안 쓰는 것 좀 분리해줘 등

엄마는 내가 출근해 있는 동안 마음에 걸렸던 모든 부분을

속사포처럼 늘어놓고는 했다.

아무래도 몸 아프고 심리적으로 거리가 먼 사위보다는

무뚝뚝해도 딸이 좀더 편해서겠지.


어제는 퇴근 후 밥을 먹고, 재활용 분리수거를 마치고,

반려인과 저녁 산책을 하고, 고양이 약과 밥을 챙겨 먹이고,

설거지 건조대 설치해달라는 엄마의 부탁에 응하고 나니

저녁 9시가 조금 넘었다.


밤새 모기와 리아의 치댐에 시달려 잠을 설쳤는데

이 와중에 생리도 터져서 한껏 지친 상태라

그냥 바닥에 대 자로 누워 있었다.

그런 내게 다가와 아직 해결 못한 부분들을 늘어놓는 엄마.


참아야지, 참아야 해. 싸우지 말자, 싸우지 말자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으나

밤 10시 웅리아 화장실 청소하는 내게 다가와서

‘부엌에 안 먹는 것들 좀 정리하자’ 하는 부분에서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내 짜증 섞인 목소리에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 상처를 남겼다.


한번은 엄마가 내 곁을 스치는데 파스 냄새가 훅 지나갔다.

내게 한 요청보다 엄마 혼자 해결한 일이 몇십 배는 많다는 반증이었다.

왜 그 수많은 고마움을 뒤로하고 내 감정을 앞세웠을까.

그 짧은 순간의 폭발이 아직도 아쉽다.


그제부로 반려인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 1차가 마무리되었다.

오늘에야 엄마와의 동거를 끝마친다.

다 큰 딸이 주는 눈치 밥과 아픈 사위의 병간호로

고생한 엄마에게 홍삼 한 박스와 약간의 수고비, 반려인의 편지를 함께 전달했다.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엄마 앞에서만큼은 절대 안 우는 나는 울음을 꾹 참아냈다.

당신은 ‘엄마니까 한 당연한 일’이라 말했지만,

그 어떤 노동도 당연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엄마는 이 한 고비를 서로가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올 거라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 그날을 누구보다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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