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부터 차고 다니던 세월호 팔찌가 최근에 끊어졌다.
진상규명이 끝나면 벗어버려야지 결심했던 팔찌인데.
수많은 마찰로 ‘리멤버’ 영문이 지워지고
20140416의 숫자도 희미해져가기 시작했지만 끊어지지는 않았는데. ...
이 팔찌가 끊어질 정도로 오랜 기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진상이 규명되지 못했구나.
반려인과 나는 출판편집자로, 같은 업계에 포지션도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피상적으로 아는 이들은 당연히
우리가 업계에서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반려인과는 세월호 농성장에서 처음 만났다.
유민 아빠의 단식이 막 시작되고 릴레이 단식이 이어지던 때였는데,
우리를 포함한 청년 몇몇이 우연히 광화문에 모여
함께 현수막을 만들고, 1인시위를 하고, 광장을 걸었다.
당시에 백수였던 그가 그 후 우연히 출판계에 입성했고,
같은 편집자 동료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친하게 지내다가 인연이 이어졌다.
첫 만남을 추억할 때마다 농담으로
우린 박근혜가 맺어준 인연이라고,
결혼식 주례를 그가 봤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최근 모 작가님과 사담을 나누는 시간에 그 농담을 했다.
작가님은 내게 가만히 대답했다.
“아니죠. 아이들이 이어준 거죠.”
그분의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집에 오자마자 반려인에게 이야기해줬다.
알고 있었냐고, 우리는 아이들이 맺어준 인연이었던 거라고.
반려인과 반려묘 리아가 암으로 외과적 수술을 한 지 꼬박 세 달이 지나갔다.
지옥 같던 나날이 어느새 잊혀지고,
집에 가면 그가 나를 기다리는 삶에 익숙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반려인이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깊이 잠들지 못한 채 매일 대여섯 번씩 일어나고,
리아는 새벽마다 자는 나에게 만져달라고 끊임없이 코를 들이대는 매일 같은 것들.
그럼에도, 둘의 기척에 함께 잠을 설치는 나날이 늘어나는 매일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싶다.
우리 인연은 보통 인연으로 이어진 사이가 아니니까, 쉽게 끝날 수 없으니까.
그는 나와 처음 사귈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늦게 만난 만큼, 남들처럼 밀당 같은 거 하지 말고,
어느 노래 가사처럼 “말하지 말고 서로 사랑만 하자”고.
나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이제는 이 문장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늦게 만난 만큼 좀더 오래 사랑하자고.
우리 인연은 그럴 만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