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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Aug 03. 2020

우리는 서로를 존중할 수 없을까

임계장 이야기

연이은 사업 실패는 아빠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타인이 ‘사장님’이라 불러주던 시절이 지나간 영광이라며 자랑스러워하던 그는 종종 졸지에 일용직 노동자가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일명 노가다판에 출퇴근하던 그는 함께 일하던 정규직들을 “나쁜 새끼들”이라 표현했다. 아빠와 같이 일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건 그 한마디뿐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였기에, 그들이 그를 어떻게 취급했는지는 아빠가 죽을 때까지 듣지 못했다. 종종 엄마를 통해 “내가 거기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면 나한테 그곳으로 출퇴근하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는 말을 건너 들었을 뿐이다.


척추 협착증과 갑상선 항진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쉽게 피곤해하면서도 아빠는 일을 나갔다. 공사현장의 일이 마무리되고서야 비로소 아빠는 수술대에 올랐다. 일하다가 몸이 망가졌는데, 모든 병원비는 회사가 아닌 우리 가족이 감당해야 했다. 왜 몸이 망가질 때까지 일해야 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고, 그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몸을 쓰냐’고 거친 말로 아빠를 원망했을 뿐이다.


일 나가야 하는 엄마를 대신해 병실에서 몸 누이지 못하는 아빠의 곁을 지켰다. 척추 수술로 천장만 바라보고 가만히 누워 있던 아빠에게 노가다판 말고 어디 아파트 경비원 자리를 알아보면 어떠냐고 넌지시 건네었지만 아빠는 60도 안 된 자신이 갈 곳이 아니라 여길 뿐이었다.

아빠가 그곳을 꺼린 이유는 경비 일이란 당신의 위치보다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석면 가루를 뒤덮인 지하실에서 3분 안에 식사를 해치워야 하는 상황, 남이 쓰던 남루한 작업복을 물려받고, 온갖 수모를 감당하며 수백 명의 입주자 및 관리사무소 앞에서 한없이 을이 되어야 하는 상황, 수많은 ‘김갑두(갑질의 두목)’ 앞에 ‘억울하다’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말서를 내밀어야 하는 상황 같은 것들.


수많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내 삶을 지탱하지만 그들의 노동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일과 생계가 소중하듯이 타인의 일과 생계도 마찬가지인데 종종 ‘대가를 지불했다’는 이유로 그의 영혼까지 잠식하고,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상대를 하대한다.



저자의 모습에 우리 집 아파트 경비원들을 대입시켜보았다. 그의 고충 안에 나는 없었을까 가만히 짐작해보았다. 그의 하소연에 “우리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던 아파트 입주자와 나는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공부 못 하면 너도 저렇게 된다’는 말이 얼마나 많은 불평등을 당연시하게 만들었는지 반성하고, “세상은 기꺼이 손을 더럽히는 사람들에 의해 깨끗이 정리될 것이다”라고 믿는다던 그의 말을 자주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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