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뒤에 오는 것들> 편집 후기
영주 작가님과는 전 직장에서 저자와 편집자로 만났다.
작가님 전작 <며느리 사표>를 읽고 1년쯤 지난 시기에,
‘사표 이후 제대로 자립하는 여성 이야기’를
두 번째 책으로 쓰시면 어떻겠냐고 제안 드렸는데
작가님이 흔쾌히 내 손을 잡아주셨다.
문제는 당시에 다니던 회사에서
내 입지가 그리 좋지 못했다는 점이다.
저자에게 ‘책하자’고 다가가 오케이를 받아내고,
저자와 함께 기획을 구성하고 기획안을 제출하면
회사에서 반려당하고 저자에게 ‘죄송하다’ 말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해 1년 동안 접촉한 저자가 30명 가까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통과시켜 계약한 기획은 단 두 건이었으니 말 다했다.
한번은 ‘이런 것까지 우리가 내야 되냐’는 말을 들었다.
(그 책,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수십만 부 나갔다)
매번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시키는 회사가 원망스러워서,
또 괜히 저자들 마음만 들쑤셔놓고는
고작 그런 말로 퉁치는 내가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영주 작가 책은 그때 계약한 도서 가운데 한 권이었다.
이 기획 또한 회사 조언에 따라 기획을 다시 짜고,
회사에서 드롭당하고, 또 다시 상신하기를 세 번쯤 거쳤다.
이건 그만 가져오라는 소리인데,
그쯤에는 나도 오기가 생겨서 모르쇠하고 자꾸만 들이밀었다.
결국 누더기 기획이 되어버렸지만, 계약은 성사되었다.
계약 이후 6개월쯤 지나
회사를 그만둔다고 작가님께 인사 드렸더니
작가님은 내게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아마도 함께 고생한 그 시간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새 직장에서 받아준 덕분에
작가님과 다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믿어준 작가님을 봐서라도 어떻게든 잘 만들고 싶었다.
다만 책 마감을 코앞에 앞둔 시점에 반려인이 쓰러졌고,
급하게 수술 날짜가 잡혔다.
마감일이 수술 전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 오후 두 시에 반려인 주치의와 수술 전 상담이 있었다.
두 시면 오전 근무는 할 수 있겠구나.
상사에게 ‘오전에 마감 치고 오후에 병원 가겠다’고 보고했다.
상사는 일이 손에 잡히겠냐고, 가족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책을 미루라고 했는데,
당시 내게는 반려인 만큼이나 이 책이 중요했다.
막상 주치의 면담하고 수술 당일이 되니 마감은 뒷전이 되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책은 나왔으나
나는 이 책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반려인의 병은 내 예상보다 훨씬 컸고,
이후 리아 병간호, 내 교통사고까지
수많은 불행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 흔한 편집후기조차 쓰지 못했으니까.
작가님께 미안했다. 이럴 거면 모시고 오지나 말 걸.
내 후회와 무관하게도 책은 알아서 분투했다.
책이 인터넷 서점에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전시들에서 연락이 쏟아졌다.
눈 밝은 타국 편집자들의 연락이었다.
수 개 출판사가 경쟁했고, 오퍼가 수락되었다.
회사에서는 창립 이래
최고 높은 오퍼 금액이라며 놀라워했다.
작가님과 함께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내 ‘결혼 이후’와 ‘퇴사 이전’에 몰아치던
수많은 혼란과 좌절을 이 책으로 견뎌냈다.
단언하는데, 담당 편집자보다 나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