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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Aug 17. 2020

개인의 기억은 왜 기록되어야 할까

<1995년 서울, 삼풍>을 읽고

1995년 일어난 삼풍 사고는 내게

교과서 속 역사의 한 장면 정도로, 무無의 기억이다.

심적으로 일치감이 덜한 그 사건으로 내가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까.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나는 어렸고,

서울은 내게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 정도 느낌이었으니까.

몇 년 지나 중고등학교 사회 과목 시간에

90년대 대한민국 급속성장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실공사로 아주 큰 사고가 몇 번 있었다’는 식으로 언급되었던 기억만 난다.

유가족과 생존자의 구체적인 증언 또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들었겠지만, 머릿속에 남기지 못했다.

<1995년 서울, 삼풍>은 참고자료로 구매했다가 단숨에 읽어버린 경우다.

책에는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소방관,

휴가를 반납하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던 간호사,

살아남았으나 그날의 기억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생존자,

사고 이후 소방차 사이렌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공황에 빠지는 희생자 가족까지

수많은 개인의 기록이 담겨 있다.

그들의 기억을 그러모았더니,

어느새 나 또한 눈앞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그 현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기록에 나오는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매년 위령제에 참가하며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또 다른 이는 가족들과 그날에 대해 말하지 않는 암묵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개인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지만 바라는 바는 비슷하다.

이 참사를 기억해달라는 것,

더불어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이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도와달라는 것.

그들이 자신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취지에 공감해

어떻게 해서든 인터뷰에 응했던 이유는

더는 자신들과 같은 아픔을 만들지 말라는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증언 가운데 ‘세월호’를 입에 올린다.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유사한 사고가 일어난다는 점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고,

유가족에 대한 비난을 보며 자신이 겪었던 일과 비교하며

세월호 유가족의 상황을 곱씹어 보기도 한다.

그들은 20여 년 만에 다시 참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마도 삼풍 불행을 겪은 이들은

컨트롤타워 없는 세월호 현장을 지켜보며

자신들이 겪었던 지옥을 다시 한 번 경험했겠구나 싶었다.

애써 잊고 살았던 그 현장의 냄새와 기억이 꾸준히 떠올랐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 수백 명만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이전에 일어난 참사의 희생자와 가족들까지 다시 한 번 죽인 셈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그 시작은 세월호여야 되지 않겠는가.


_

“자기 일이 아니니까 (삼풍 참사가 잊혀져 가는 것이) 이해는 되는데 이번 기회에 기억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 그저 작은 바람입니다. 별다른 거는 없고, 저는 그거면 충분할 거 같아요.”


“매년 6월 29일이 되면 생각나요. ‘오빠가 20년이 지나도 너를 이렇게 생각한다’ 하면서. 나중에 세월이 흘렀을 적에 삼풍백화점 사고가 이렇게 발생했고 또 남은 가족들이 얼마 만한 고통 속에서 세월을 살았구나, 라는 것.  누군가는 얘기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움직였던 거죠. 그래서 전화를 드렸던 겁니다.”


“축하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시신을 찾으면) 우리도 모르게 가서 꼭 껴안고 서로 울어가면서 축하합니다 했어요. 원래는 좋은 일이있을 때 하는 말 아닙니까? 시신을 찾게 되면 서로 꼭 껴안고 울었어요. 거기서. 사고를 안 당해본 사람들은 몰라요. 그거를. 팽목항에 계셨던 세월호 실종자 가족분들 가슴은 새카맣게 탔을 거예요. 우리는 3개월 정도 있으면서 가슴이 새까맣게 탔는데 그분들은 1년 넘게 계셨잖아요.”


“‘내년이면 괜찮아질 거다, 몇십 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가 아닙니다. ‘몇십 년 후에는 더 힘들어질 거다. (죽은 자가 남긴 짐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입니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어요. ‘그러나’라는 단어를요. 또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는 ‘ing’라는 단어를요. 견디고 또 참아내면 저희 세대로 끝나겠죠. 하지만 제 자식 세대가 그 짐을 들고 가게 된다면 못 견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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