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2020.12.06.

by 아나스타시아

10년간 함께한 리아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석 달, 친구로, 애인으로, 반려자로 함께한 당신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두 주가 지났다. 둘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프기 시작해서,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등졌다. 아픈 와중에도 내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둘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눈물도 슬픔도 애써 외면한 채 그저 '좋은 이별'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종종 힘들었지만 되도록 많이 웃었고, 꾸준히 추억을 쌓아갔다. 그리고 정말 이별의 순간이 지나갔고, 이제 함께 살던 우리 집은 너무 큰 고요에 싸여 있다.



남은 자인 내 삶의 모든 순간에 당신은 녹아 있다. 난 무엇을 보든 '당신과 와본 곳과 와보지 못한 곳', '당신과 먹어본 것과 먹어보지 못한 것', '당신과 해본 것과 해보지 못한 것'으로 구분한다. 내 마음은 이런저런 생각에 너무나 시끄러워서, 종종 건너야 횡단보도 신호를 놓치거나 내릴 버스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은 운전이 조금 무섭다.


어쩔 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담담하다. 그저 당신이 아직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냥 내 눈에 안 보이는 것뿐, 어딘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지면 당신 영정사진에 대고 '보고 싶어' 말해보기도 하고, 당신이 좋아하던 노래를 무한 반복하고, 과거에 당신이 써놓은 글들을 미친듯이 찾아 읽는다. 자꾸만 당신의 핸드폰으로 페이스북을 들어가기에, 당신의 페이스북은 늘 on으로 되어 있다.


때로는 당신이 너무 밉기도 하다. 어떻게 이렇게 가버릴 수가 있니. 그런데 그 생각을 하면 이내 죄책감이 밀려온다. 당신이 얼마나 살고 싶어 했는지 아니까. 업무에 복귀할 날을 꿈꾸며 새벽 4시마다 일어나 책을 읽던 당신이니까. 암이 재발할까봐 머리를 쓰는 게 무섭다던 당신이니까. 한번은 내게 "당신을 보면 살고 싶어져"라고 말했지. 난 무리한 요구인 걸 알면서도 "그럼 살아줘, 나와 웅이를 위해 힘내줘"라고 대답했다. 그때 당신 마음이 얼마나 서글펐을까.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에게 더 힘을 내라니. 그래서 이제 나는 '힘내'라는 응원과 위로가 싫어졌다.


요즘에는 계속 페이스북에 배설 같은 글들을 쏟아낸다. 남들에게 위로받고 싶은가 보다. 리아 질병일지부터 당신의 질병일지까지, 수많은 글을 남기며 타인에게 위로를 구걸했다.


당신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내게 이제 SNS에 그런 글을 그만 올리라고 했다. 보는 자기가 더 아프다고. 이 사람도 내가 쓰는 글에 감응될까봐 힘들어서 그렇구나, 생각하면서도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쓰는 글로 인해 기꺼이 다가와준 이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떠나갔다. 글을 하나둘 올릴 때마다 팔로잉 수가 줄어드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그럼에도 집의 고요가 너무 버거워서 나는 자꾸만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써놓고 나서 아침이 오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겠다. 나에게는 애도의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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