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겠어

2020.12.07.

by 아나스타시아

당신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당연히 ‘15년 전에 콩알만하게 있었다던 양성 종양이 커졌나 보다, 수술만 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낙관했다. 울면서 ‘미안하다’ 사과하는 시부모에게 별거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던 순간은 금세 찾아왔다. 의사가 보여준 MRI 사진 속 종양은 비전문가인 내 눈에도 너무나 커 보였다. 6, 7센치미터 종양은 이미 한껏 커져 뇌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환희 씨가 눈치 챌까 싶어 얼른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


의사와의 면담은 1-2분이 채 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도 안 되어서 너무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는 서로를 안아줄 새도 없이 헤어져야 했다. 간호사에게 사정해서 몇 분의 시간을 얻었다. 마주 앉아 그의 손을 잡아주었는데, 그가 울면서 “나 없이도 잘 살아”라고 말했다. 3개월 이상 깨어나지 못하면 그냥 놔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사람, 포기했구나.’ 우선 수술부터 시켜야 했다. 나는 그에게 “나 과부 만들 생각 하지 말고 나을 생각부터 해야지”라고 힘주어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수술 후 내게 “나였으면 그런 상황에 그냥 울고만 있었을 텐데 자기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해준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양성이 아니라면 수술만이라도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좀더 구체적인 언어로 빌어야 했을까. 수술은 잘되었지만 수술 직후 의사에게 받은 소식은 예상과 달랐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전갈이었다. 시아버지는 울먹거렸고, 시어머니는 두 팔과 다리를 하늘로 뻗은 채 악을 쓰며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얼마 남았느냐 물었더니 평균 수명이 1년 5개월인데 환희 씨는 젊으니 3년 정도 살지 않겠느냐고 했다. 완치율은 어떻게 되는 물음에는 전 세계에서 1퍼센트라고 대답했다. 전 세계 1퍼센트라니. 마치 희망을 버리라는 의미로 들렸다.


혹시 내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나는 꼭 당사자에게 알리겠다고 생각해왔다. 당사자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족으로서의 의무라고 여겼다. 근데 그 말, ‘당신,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된대’라는 말이 도저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술 직후 정말 잘 살아내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그 앞에서 몇 번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닫았다. ‘그래,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도 아니고, 의사는 보통 보수적으로 이야기하니까, 못해도 마흔까지는 살겠지. 그때까지 최대한 편하게 해주자.’ 이미 몇 번이나 내 낙관이 부서졌는데, 또 낙관 회로를 돌리고 말았다.


시한부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사를 결심했다. 다음 날 오전에 집을 내놓아 가계약하고, 저녁에 이사갈 집을 구해 가계약해 한 달도 안 되어 이사를 마무리했다.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기면 좀더 오래 살지 않을까 싶어서 무리한 거였는데 이 결정이 당신을 며칠이나 더 살게 했을지 모르겠다. 이사온 집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하는 당신 덕에 한동안 뿌듯했다. 이곳에서 사계절을 몇 번 겪고 난 뒤에 깨끗하게 나아서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부터 성당에 가면 “저희 집 식구들에게 있는 암 세포를 깨끗하게 걷어가주세요”라고 빌었다. 내 기도 내용을 들은 당신은 “그런 기도는 하느님이 안 들어줘”라고 했는데, 정말 안 들어줬다. 그럼 뭐라고 기도해야 들어줬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안 들어준다는 말만 하지 말고 어떻게 기도해야 들어주는지도 좀 가르쳐주고 가지.

오늘은 호스피스 병동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궁금해서 걸었다고 했다. 당신의 발인 날 쏟아진 당신 관련 연예면 기사들이 호스피스 병동 내에서도 화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당신 이야기로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수녀님은 내게 “이제 잘 먹어야 해요. 지은 씨가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하는 거 보면 얼마나 슬프겠어”라고 이야기했다.


당신은 1년 5개월은커녕 7개월도 채 살지 못했고, 1, 2년은 더 살 수 있다던 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제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지난 5월부터 계속된 내 기도는 하느님께 닿지 못했음이 증명되었으니까. 수녀님께 대체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느님이 소원을 들어주시는지 묻고 싶었는데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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