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1.
리아와 당신은 보름 차이로 수술대에 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환자는 물론 보호자도 병원 밖을 나갈 수 없는데, 내가 병원에 보호자로 등록하면 리아 간호는 포기해야 했다. 12시간에 한 번씩 약을 먹여야 하는데다가 고양이 약 먹이기는 쉽지 않은 미션이니, 누군가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시골에 계신 시아버지를 서울로 불러 보호자로서 병원에 집어넣어버렸다. 한창 농사 일로 바쁠 시기였는데, 게다가 며느리라는 인간이 ‘(내게는 가족이지만 그에게는 한낱 ‘애완동물’일) 고양이 때문에 병원에 못 들어간다’는데도 군말 없이 보호자를 자청해주셨다. 미안함에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아들과 24시간 붙어 있겠냐”는 말로 미안함을 조금은 덜어주셨다.
시아빠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다. 수많은 상상력으로 온갖 일을 창조해내는 분이 병원 안에 갇혀 있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싶다. 병원 안에 있을 때 너무 우울해서 ‘이러다가 아들보다 내가 먼저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스쳐 지나갔다고 하셨다. 시아빠는 우울한 감정을 이기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였는지 당시 아들과 함께 나눈 모든 대화, 그때 느꼈던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어쩌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본인이 대신 있으니 그 기억을 나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인지도 모르고. 시아빠는 병원 밖을 나서자마자 도망치듯 상주로 돌아가서는, 댁에 도착하자마자 “환희에게는 보여주지 마”라는 말과 함께 그 기록을 공유해주었다.
그 기록 안에는 내가 모르고 살던 당신의 약한 감정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에게 폐가 되는 스스로가 미워서, 출근 시간인 아침 9시가 오는 게 두려워서 변기 위에 앉아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만 아팠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던 나날 등. 당신은 시아빠에게 “아빠, 이건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것일지도 몰라”라는 말을 했다. 그 감정을 마음속에 담고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면서도 정작 당신이 반드시 털어놓았어야 하는 나약함들을 받아 안아주지 못했구나 싶었다. 나는 왜 당신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을까. 당신은 왜 나를 힘들 때 기대도 되는 듬직한 존재로 느끼지 못했을까.
당신은 나와 함께하는 모든 나날이 행복이었다고 대답했다. 아마 그 행복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혼자 참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댄다고 해서 함께 쓰러질 만큼 나약하지 않은 관계였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정도로 연약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든 당신을 등에 업고 그 길을 함께 헤쳐 나갔을 것이다.
시아빠가 퇴원하면 뭐가 제일 하고 싶냐는 물음에 “지은이와 고양이 둘과 침대 위에서 낮잠을 자고 싶다”고 대답했다지. 그 사소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나는 못할 것이 없었는데. 뭐든 할 수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