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2020.12.13.

by 아나스타시아

당신이 없어도 있을 때와 다름없이 인사를 건넨다. 여전히 자기 전에 “잘 자. 내일 봐”라고 중얼거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허공에 대고 “잘 잤어?”라고 묻는다. 당신이 가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혼자라는 생각에 잠드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하루를 더 사는 딱 그 만큼 우리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잠드는 게 외롭지 않다.


오늘 아침에는 평소와 조금 다른 말을 내뱉었다. 커튼을 걷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눈 내린 북한산 자태에 탄성이 나왔다.


“자기가 이 모습을 보고 갔어야 하는데!”


당신이 너무나 사랑하던 이 집에서 두 계절밖에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이런 중얼거림을 이끌었나 보다.



우리는 첫눈이 오면 늘 서로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밖에 눈 와.” 그러면 다른 한 사람이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이 오든 안 오든 당신은 “어차피 함께가 아닐 때 오는 눈 따위는 첫눈 아냐. 담에는 눈 같이 맞자”라며 남들이 들을 땐 오글거릴지 몰라도 내게는 달콤한 말들을 해주었다.


올해 첫눈을 만났는데 ‘눈 온다’고 문자를 보낼 사람이 없다. 그게 또 서러워졌다. 메신저 창을 조금 뒤적거리다가 엄마와 동생에게 눈이 내린 북한산 전경을 보냈다. “너무 멋진데.” “예쁘네.” 원하는 답이 아니다. 또 다시 메신저를 뒤적이다가 시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 있냐는 시아빠에게 눈이 온다고, 혼자 보기 너무 아깝다고 말하다가 울어버렸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린 그는 내게 “울고 싶을 때 울되 너무 많이 울지는 말거라. 환희가 너무 가슴 아플 거야. 우리 며느리는 씩씩하니까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대답해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원하던 답이었나 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조금 더 울었다.


그리울 때마다 당신이 남긴 글을 읽는다. 어제까지 읽어 내린 당신의 글들에는 산 자의 외로움과 고통이 가득했다. 왜 좀더 타인의 고통에 깊이 감응할 수 없는지, 말과 행동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연대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하는지 자책하는 글이었다. 말과 행동조차 수반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내 고통이 아닌 이상 오롯이 공감할 수는 없는 것인데 어째서 당신은 그토록 혼자 분투했을까. 이제 더는 그러한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간 당신이니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데, 당신과 달리 이기적인 나는 더는 눈 내리는 아름다움을 오롯이 보지 못하고 그 앞에서 결핍을 느끼는 내 몸에 연민만 인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에게 기대지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