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8.
시엄마가 김치를 보내주셨다. 사람 입은 반으로 줄었는데 김치는 평소와 다름없이 한 통 가득이다. 혼자 있다고 잘 안 먹을까봐 배려해주신 것이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전화할 용기는 나지 않아서, 결국 시아빠에게 전화 걸어 감사함을 대신 표현했다.
이맘때면 환희 씨와 같이 시골에 내려가 함께 김장을 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맞벌이 부모 손에 큰 내게는 김장 같은 연례행사가 신기했고, 체험학습 온 것마냥 신났던 기억이 난다. 비록 대부분 시엄마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절인 배추에 소를 넣기만 하면 되었으니 즐거웠겠지만. 시부모는 내가 불편해할까 싶어 먼저 배려해주는 고마운 분들이었다.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갈 때도 환희 씨는 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면 조건 없이 사랑해주실 분들”이라고 자기 부모를 소개했다. 한번은 상주에 있다가 배탈이 났는데, 시엄마가 직접 배를 마사지해주고 내 시중을 들기도 했다. 시집살이라는 단어는 나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시부모를 사랑했다. 그들도 나를 사랑했음이 자명하다. 명절이 결혼한 여성에게 가져다주는 불합리를 거부하겠다고 ‘명절 폐업’에 나선 아들 부부에게 결국 져주었던 것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틀어졌는가. 그 사랑이 깨진 것은 종양이 가져다준 불행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병명이 밝혀지고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이 어머니 귀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분 머릿속에는 ‘내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밖에 남지 않았다.
병원에서 ‘남은 생은 2, 3개월 정도고, 최대한 먹고 싶은 것 많이 먹고 좋아하는 것 많이 하다가 다시 들어오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퇴원(당)하던 참이었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그의 몸 상태로는 약 4시간의 차를 타고 가는 일이 큰 모험이었지만, 그나마 가장 건강할 때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향에서 부모가 지어준 따뜻한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고향 친구들과 친척들 얼굴도 마주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어주려 했다,
병원에서 들은 상황을 설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 날 아침, 시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향으로 오는 것을 환영하고, 환희 씨가 나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상주에서의 4박 5일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어머니는 환희 씨를 보자마자 “아들!” 하고 외치며 “너는 내 아들이다, 그러니 내 말만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널 살리기 위해 박사 될 만큼 공부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본인이 어딘가에서 배운 모든 민간요법을 환희 씨에게 총 동원했다. 누룽지 태운 물을 수시로 먹이고, 전** 박사가 만들었다는 녹즙 가루를 하루에 10봉지씩 타 먹였다. 비타민이 중요하다며 사과즙을 하루 5봉지 먹였고, 산야초에 10여 가지 데친 야채를 섞은 샐러드, 암에 좋다는 수어 가지 곡물이 섞인 돌솥밥, 풀만 뜯어 먹고 자란 소를 우린 곰국 등을 매일 대령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작은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작은 방에 있는데 환희 씨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보니 환희 씨 바지가 벗겨져 있고 어머니가 환희 씨 양 팔을, 아버지가 양 다리를 붙잡고 무언가를 하려던 참이었다. 너무 놀라 환희 씨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내가 우니 그는 “아니야, 아니야, 나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관장이라고 했다. 하루 세 번 해야 된다고 했다. 울면서 생각했다. 내가 힘 센 남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이라도 당신을 등에 업고 이곳을 빠져나왔을 텐데.
그날 밤, 시부모와 형님, 아주버님에게 읍소했다. 왜 뭐든 마음대로 하시냐고, 제발 우리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상의 좀 해달라고. ‘필요하냐’고 먼저 묻고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나서 달라고. 분명 알았다고 했는데 다음 날이 되면 또 내가 모르는 무슨 일들이 이루어졌다.
어떤 날은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잔뜩 몰려왔다. 내가 잠깐 나간 사이 일어났는데, 집에 돌아오니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환희 씨에게 “물러가라! 물러가라!” 소리 지르고, 환희 씨는 방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다. 밖에 있던 시아빠에게 지금 저게 뭐냐고 물으니 구마기도라고 했다. 구마기도가 뭔지 몰라서 말리지는 못하고 밖에서 계속 서성거렸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들을 내쫓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군가 환희 씨에게 귀신이 들었다고, 귀신을 내쫓아야 한다고 그랬단다. 시엄마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카더라’들을 그대로 받아 안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이미 이성을 잃었다.
스테로이드를 최대치로 처방받았더니 환희 씨는 먹을 거에 욕심이 대단했다. 나는 그가 먹고 싶다는 건 다 챙겨줬는데, 그 모습을 본 시엄마는 못마땅해했다. 암환자는 많이 먹이면 안 되는데 내가 자꾸 먹인다는 거였다. 전 찹쌀떡 한 개 먹였는데, 어머님이 매 식탁에 올리는 ‘필수 음식’만 열두 가지인데.
한번은 그것 때문에 싸움이 났다. 환희 씨가 먹고 싶다는 인절미를 찾기 위해 부엌에 들어갔다가 시엄마의 제지를 당했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소리 지르며 울다가 환희 씨에게 다가가 그냥 이 집에서 나만 사라지면 될 것 같다고, 내가 떠날 테니까 당신은 여기 남아 있다가 다 나아서 돌아오라고 하고 짐을 챙기러 방으로 들어갔다. 시엄마가 방으로 따라 들어오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지은아, 내가 살릴 수 있어. 내게 한 달만 시간을 줘. 한 달만 주면 싹 낫게 해서 돌려보내 줄게. 제발, 제발.”
눈이 돌아간 나는 시엄마에게 지금 매일매일 나빠지는 게 빤히 보이는데 두 달 남았다는 사람의 한 달을 이런 식으로 빼앗을 거냐고 악을 썼다. 그 순간 밖에서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시아빠 소리가 들렸고, 뛰어 나가보았더니 환희 씨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내가 집에 가겠다고 하자마자 쓰러졌다고 한다. 그를 껴안고 “미안해, 미안해. 나 안 갈게. 어디 안 가” 달래주었더니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아빠는 나에게 “지금 환희는 너 없으면 죽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내 화를 못 이겨 그를 죽일 뻔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서울로 향했다. 이후 나는 시엄마만 보면 표정이 구겨졌고, 시엄마는 나를 보면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던 그 마음은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