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나만큼 불쌍한 시엄마

20.12.14.

by 아나스타시아

3년 전, 아빠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번에 내 곁의 가까운 누군가가 떠난다면 병사했으면 좋겠다. 최소한 이별할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 없이 맞이한 이별이 서러워서 한 생각이었는데, 막상 병사로 배우자를 보내고 나니, 이별을 준비할 시간은 슬픔의 크기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음만 깨달았다. 아빠의 죽음은 글 한두 편 끼적인 것으로 극복했는데, 배우자 이야기는 수 개의 글을 쓰고 계속 이별을 상상했음에도 여전히 머릿속에 수많은 슬픔이 떠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그가 사고로 돌아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한 적이 있다. 그랬다면 나와 그의 가족이 이토록 상처를 주고받지는 않았을 텐데 싶어서. 만약 그가 좀더 긴 시간 병을 앓다 떠났다면 나는 그의 가족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르겠다. 내가 세상에서 이토록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스스로가 낯설 만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악을 쓰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했다.


시엄마 사이에 있었던 일을 터놓으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너 정말 고생했겠다고 나를 위로하거나, 그분 정말 너무하다고 시엄마를 비난하거나. 사람 마음이 희한하지. 그토록 미워했건만, 시엄마를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상한다. 나는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너무 소중해서, 의사는 포기했지만 본인은 포기할 수 없어서 뭐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매달린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저 아들을 너무 살리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을 따름이다. 내가 내 남편이 남은 생을 충만하게 즐기다가 떠나게 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듯이, 시엄마는 당신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죽음을 서둘러 인정했지만, 그분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같은 상황에서 나오는 결과가 달랐고, 그로 인해 계속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나 역시 당시 상황 안에 놓여 있을 때는 우리의 존엄한 이별을 방해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분은 환희 씨가 스스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면 분명 ‘엄마 좀 그만하라’고 소리쳤을 순간들을 매번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시간이 좀 지나고 시엄마와 물리적으로 떨어지고 나니,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이제는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그 이후 그분은 내게 분노의 대상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 치환되었다.


호스피스에 있을 때, 지금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묻는 수녀님에게 환희 씨 어머니가 너무 밉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수녀님은 시엄마 면담을 자청했다. 그분은 시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당신 아들밖에 안 보이죠? 며느리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보이지도 않죠? 지금은 그럴 수 있어. 엄마니까. 근데 환희 님 떠나보내는 거 엄마만 슬픈 거 아니잖아. 엄마가 자기 슬픔에 취해서 이러면 다른 가족들은 제대로 애도하지도 못해요.”


그 면담 이후 시엄마의 태도가 바뀌었다. 일주일에 택배를 다섯 박스씩 보내도 그 안에 내 몫은 하나도 없었는데, 병원 안에 갇힌 나를 위해 파스를 사오고 소고기를 사주었다. 병문안 와서도 자기 아들 만지고 기도하는 것만 집중하던 분이 언제부턴가 나를 바라보며 ‘무릎은 다 나았냐’, ‘밥은 잘 챙겨먹고 있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도 다친 마음을 조금씩 다시 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의 질병은 우리를 끊임없이 분열시켰지만 어떤 부분은 결합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동병상련. 이것이 우리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일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시엄마와 처음 마주했을 때, “밥은 먹었니” 물어보는 그분이 너무 안쓰러워서 무작정 달려가 그분을 꽉 안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불쌍해하며 몇 분간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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