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모르는 이들의 수많은 애도

2020.12.15.

by 아나스타시아

그가 떠나고 가까웠던 지인과 친구들뿐 아니라 낯모르는 이들도 애도와 기도를 보내주었다. 환희 씨의 발인 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수시로 ‘이환희’ 이름이 뜨고, 그의 이름이 연예 기사 포털 면을 장식했다. 덕분에 나도 수 개의 기사에 이름이 올랐다. 몇몇 분은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내주었다. 노명우 교수가 경향신문에 <먼 여행을 떠난 편집자 이환희 씨>라는 칼럼을, 김경미 섀도우캐비넷 대표가 여성신문에 <떠나간 남성 동료 환희가 꿈꾸던 22세기>라는 칼럼을 올려 추모해주었다. 독립서점 ‘정치발전소’는 그를 위해 12월 한 달 동안 ‘이환희 편집자 추모 도서전’을 열어주었고, 올해 12월에 출간된 <편집자란 무엇인가> 개정판에는 “편집자 고 이환희 님을 추모하며”라는 글이 새겨졌다. 그 외에 몇몇 신문 및 잡지에서 환희 씨를 위한 특집들이 준비되고 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이토록 대단한 사람과 결혼했던 거였나?’ 싶어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의 SNS 댓글에는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진심으로 기도했어요” 같은 글들이 자주 보인다. 환희 씨를 본 적도 없는 수많은 사람이 그를 그리워하고 아까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환희 씨는 마블 캐릭터 가운데 ‘캡틴 아메리카’를 가장 좋아했다. 내가 볼 때 캡틴 아메리카는 전형적인 미국 영웅주의에 빠진 인물 같은데 뭐 이런 캐릭터를.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그가 보여준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를 보고 조금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정의롭고 따뜻하지만 선천적으로 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자신의 이상을 어디에서도 실천하지 못한다. 빈약한 몸에 작은 키, 수많은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그는 정의를 위해 싸우기보다는 그저 자기 한 몸뚱이 살아내면 다행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몸을 던졌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사람 구하는 일을 하게 된다.


환희 씨는 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 미국 장갑차에 깔린 효순이 미선이를 살려내라고 외치는 촛불 시위에 참여하고 국가안보법으로 기소된 송두율 교수를 구명하는 ‘세이빙송’에서 활동했으며, 개혁당 창당 당원으로, 청년녹색당에서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씨앗들 협동조합에서 도시농부로, 출판노동자로, 이지은의 남편으로 여러 가지 옷을 입고 있던 그는 그 많은 꿈에 비해 가진 체력이 많지 않았다. 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고, 20대 초반에는 큰 질병을 앓아 죽을 위기를 넘기기도 했으니, 병약한 몸과 수많은 위기를 넘겨 많은 이의 영웅이 된 캡틴에게 감정 이입을 하지 않았을까(물론 환희 씨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영웅주의를 경계했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혁수(권상우)도 그가 애정하던 캐릭터였다. 기본적으로 많은 눈물과 순한 감성을 가지고 태어난 환희 씨는 남성 사이의 일상인 ‘성적 농담’이나 ‘형님 문화’ 등 세상의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힘들어했기에 혁수 같은 캐릭터에 빠져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환희 씨는 흔히 말하는 스탠더드 남성성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남성 사이에서 1.5등급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 같다고 느꼈다. 즉 그는 스스로가 비주류임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런 소수자 감성이 다른 소수자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던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그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 센터인 ‘띵동’을 후원하고, 마지막으로 구매한 책이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였던 것을 보면 그렇다. 많은 이들이 그를 아까워하는 이유는, 자신의 결핍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결핍을 채워주려 노력했던 그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 아닐까.


더불어 환희 씨는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는 주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자신은 공무원 교사인 중산층 부모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고, 알 만한 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남성으로 태어나 큰 상처 없이 자랐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인이 페미니즘과 젠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임에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지는 못했다. 여성의 고통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자청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실례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늘 자신의 특정 행동이 남에게 무례하게 비추어질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이런 그의 조심스러운 태도와 진심을 거짓 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이들이 그를 추모해주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여하튼 그를 아끼고 떠올려주는 사람이 많으니 오늘도 조금만 슬펐다. 이토록 멋진 사람이 내 남편이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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