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9.
브런치에 쓴 글이 메인에 노출되었나 보다.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글을 클릭했고, 해당 글의 이전 글과 이후 글의 조회수도 함께 치솟았다. 의아했다. 뭐지? 왜 사람들이 이런 배설 같은 글에 관심을 두지? 날 동정하나? 연민인가? 혼자 중얼거리다가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이런 피해망상에 자기 비하는 어디에서 왔지. 환희 씨가 옆에 있었다면 다정한 잔소리 한 바가지 퍼부었을 것 같다.
내 찌질함을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왜 스스로 쓴 글을 믿지 못하는지. 사람들의 다정함을 동정과 연민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최근에 경험한 사건 하나가 나를 방어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 지루하고 심심했다. 간병하는 이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고통도 호소하는 다른 암 환자들과 달리 환희 씨는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잠을 자는 것 같지는 않은데, 눈을 뜨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했고, 나중에는 그런 중얼거림마저 사라졌다. 그저 숨 쉬는 게 최선인 시간. 종종 환희 씨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지만 소통 없는 대화는 오래 가기 힘들었다. 몇 번은 그 비좁은 환자 침대 위에 올라가 당신의 작은 어깨에 몸을 기대기도 했다. 그러나 다정한 온기를 느끼고 싶어 다가간 내 행동이 당신의 삶을 단축시킬까 두려워 오래 기대지는 못했다.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욕창이 생기지 않게 두 시간마다 몸을 기울여주고, 하루 한 번 수건으로 세수시키기, 면도 정도뿐이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코로나 때문에 병동 밖을 나가기도 어려웠고, 잠깐 나간 사이에 당신이 떠나버릴까 두려워 그냥 가만히 앉아 병실을 지켰다. 책이라도 읽어볼까 싶어 호스피스 병동 내에 있는 서가 앞을 서성거리다가 몇 권 들고 왔지만 글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기분이었다. 가끔 게임도 했다. 포켓몬고. 병원에 포켓스탑이 세 군데나 있어서 포켓몬을 엄청 잡았다. 하루 몇십 마리씩 포켓몬을 잡아도 하루가 끝나지를 않더라. 그마저 지겨워서 며칠 하다가 그만둬버렸다.
매일 시간 죽이는 내가 너무 심심해 보였나. 언젠가 수녀님이 작은 책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좋은 생각> 비슷한 책이었다. 한번 후루룩 훑어보다가 말미에 ‘원고 모집’ 광고를 발견했다. 시간 많은데 투고나 해봐야겠다 싶었다. 1월 주제가 ‘정리’이기에 아빠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에 마음을 정리한 글을 써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집부에서 글을 수정해달라고 전화가 왔다. 내 글의 주제는 ‘아빠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나’에 초점이 있었는데, 사랑이 가득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달라 했다. 고민하다가 수정해서 보냈는데 부족했는지 좀더 구체적인 다정함을 써달라 했다. 함께 여행이라도 가지 않았는지, 같이 본 풍경이나 추억은 없는지. 세 번째 수정 요구를 받았을 때 ‘우리 아빠는 다정하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다는 그리움보다는 그가 손 내밀지 않으면 내가 먼저 내밀면 되는 거였는데 그 사소한 걸 못했다는 후회스러움에 관해 쓰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이 글이 잡지의 의도와 맞지 않다면 실지 않으셔도 좋다고 답변했다. 결국 ‘이대로 싣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들은 자꾸 내 자기소개에 환희 씨 이야기를 넣으려고 했다.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이므로 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는데 “당신 삶에서 남편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지 않느냐, 다른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정리되게 하겠다, 자기소개를 보며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시에 내가 꼬여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불행으로 장사한다고 느껴졌다. 할 수 있다면 글을 뺏고 싶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면서 남편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비쳐지고 싶지 않다고, 우리 부부는 불행하지 않다고, 우리에게는 너무 행복한 기억뿐이라고 대답했는데, 그 이후로 내 자기소개가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모르겠다. 정리해서 보여주질 않더라고. 해당 잡지의 1월호를 찾아 읽지 않을 것이다. 분명 실망할 테니까.
내 글이 우리 부부의 불행을 전시하는 수단이 될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하나의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몰고 온다. 당신과 나의 밀도 높은 관계가 납작하게 보이면 어쩌나, 내 글이 당신의 죽음을 왜곡하면 어쩌나 등등. 당신 앞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용감했던 나인데, 지금은 가파른 성을 쌓아놓고 그 안에 혼자 들어앉은 나약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