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5.
응급실에 입원했을 때, 환희 씨 상태는 우리 엄마도 못 알아볼 만큼 심각했다. 의사는 지금 많이 고통스러울 테니,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함께 있던 엄마는 의사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단번에 알아들은 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물었다.
“얼마나 남았나요?”
돌아보면 그날이 제일 길었다. 당신을 잃을 순간이 막연한 추측이 아닌 구체적인 언어로 다가온 날. 내내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던 그에게 온갖 약물이 투여되었고, 스테로이드로 뇌부종을 가라앉히자마자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당신은 내게 “지은 씨, 나 어떡해. 나 미친 것 같아. 장모님도 못 알아보고... 나 미친 것 같아”라고 울면서 말했다. 정신이 부서진 당신에게 재수술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저 “괜찮아, 괜찮아. 금방 괜찮아진대” 하며 의미 없는 위로를 건네었던 것 같다.
제정신을 차린 그가 나 다음으로 찾은 건 ‘준혁’이라는 친구였다. 전화를 걸고 싶은데, 패턴 여는 법을 잊어버려서 혼자 애쓰는 모습을 본 엄마가 대신 전화를 걸어주었다. 평소에 중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아 의아했다. 나중에 “준혁이는 어떤 친구야?” 물어보니 그는 “선한 친구야”라고 대답했다. 어린이집 다녔을 만큼 작은 아이였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라고 했다. 그 친구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다급하게 수술을 이야기하던 의사는 MRI를 보고는 태도를 바꾸었다. 이미 뇌 안쪽까지 종양이 다 퍼졌고, 지금 수술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무리해서 수술했다가 뇌사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남은 생이 6개월 정도라도 된다면 시도할 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럼 얼마나 남은 건가요?” “글쎄요, 한 2, 3개월?”
의사는 퇴원을 권했다. 남은 생을 병원에서만 지내는 건 환자에게도 불행이라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아하던 것도 많이 보다가 들어오라고 했다. 의사가 원망스러웠지만, 내 눈을 자꾸만 피하는 그를 보며 당신도 나름 미안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환희 씨의 남은 생을 온전하게 행복으로 채우기에도 짧은 시간이니까, 내 인생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의사까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바빴다.
퇴원하자마자 면회 스케줄을 짰다. 당신이 좋아하던 동료와 친구들을 하나둘 불러들였다. 그 가운데 준혁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환희 씨가 이야기한 대로 선하게 생긴 친구였다.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에게 행복이자 동시에 독이었다. 그는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한껏 즐거워하다가도, 그들이 가고 나면 심하게 좌절했다. 그 좌절은 간질이나 발작, 호흡곤란, 눈물 같은 것들로 표현되었다.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는 환희 씨를 본 시아빠가 “이제 환희 생각해서 사람들 부르는 건 그만해야겠다” 이야기했다. 환희 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래, 나를 좀 생각해줘!”라고 대답했다.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던 시기라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알겠어, 안 부를게” 달래며 안아주었다.
이후로는 사람들의 만남을 자제시키고 전화 통화, 카톡, 페이스톡 위주로 소통했다. 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서 건네주었으나, 준혁이란 친구에게는 종종 우리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었다. 임종방으로 옮겼을 때도 시부모 다음으로 연락한 사람이 준혁 씨였다. 그는 반차를 내고 바로 달려와 환희 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주었다. 준혁 씨의 장점은 환희 씨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건넬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환희 씨가 가지 않을 사람인 것처럼, “너 일어나면 재수 씨에게 진짜 잘해줘야겠다, 너 땜에 엄청 고생한다” 같은 가벼운 말들로 면회 시간을 꽉 채운 다음에 돌아갔다. 인사하기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아플 때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보았으니 환희 씨는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환희 씨가 떠나고 나서도 그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환희 씨를 집에서 간호할 때 “자기 먹고 싶은 거 다 말해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펜과 종이를 쥐어주었더니 몇 가지 끄적거렸다. 삐뚤빼뚤한 그 글씨에 적힌 음식 모두 다 먹였는데 딱 한 가지, 수제버거를 못 먹였다. 그거 못 먹인 게 마음에 걸린다는 내 말에 시아빠는 “하늘나라에서 파는 수제버거가 더 맛있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내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반면에 준혁 씨는 당신이 묻힌 곳에 수제버거를 사들고 직접 가줬다. 그 인증 사진에 고마워서 또 한참 눈물 흘렸다. 연고 없는 용인에 당신을 놔두고 온 게 계속 걸렸는데, 마음 알아주는 친구가 가까이 살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폰에 그의 폰 번호를 저장해두었더니, 카톡 ‘생일인 친구’에 그가 떴다. ‘아, 준혁 씨 생일이구나’ 잠깐 생각하다가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졌다. 원래 환희 씨가 줘야겠지만 이제는 나만 줄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해냈다.
환희 씨 떠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환희 씨 카톡이 울렸다. 장례 후 개인 톡으로 온 처음이자 마지막 메시지였다. “메시지 보내면 지금이라도 답장이 올 것 같은데”로 시작해 “보고 싶다”로 끝나는, 준혁 씨 문자였다. 그 문자를 본 첫 느낌은 ‘부럽다’였다. 가끔 나도 환희 씨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보고 싶어”라는 메시지에 “나도”라는 답장을 받으려면 선톡을 해야 한다. 그는 그 선톡을 했다. 반면에 나는 한 번도 환희 씨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환희 씨 폰은 내 손에 있고, 그의 문자를 내가 받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환희 씨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과 ‘나와의 채팅’이 다르지 않다.
나는 못 받는 그 선물을 준혁 씨에게 해주기로 했다. 환희 씨 폰으로 그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준혁아, 생일 축하한다. 나도 보고 싶다.” 그가 문자를 보낸 지 20일 만에 보낸 답장이었다. 내가 보냈다는 사실을 알겠지만 준혁 씨는 시치미를 떼고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 잘 살아볼게.”
서로 알지만 모른 척하는 그 연극이 끝나고 조금 더 길게 울다가 잠들었다. 당신도 연극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늘도 꿈에 나와주었다. 나도 당신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고마워, 나도 잘 살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