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의 기억

2020.12.27.

by 아나스타시아

수 개월간 말기 암 환자를 간병했다고 하면 보통 안쓰럽게 생각한다. 편견이다. 남은 생이 3개월 정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 밖을 나선 뒤 장례를 치를 때까지, 우리는 그 시간을 행복으로 꽉 채웠다. 지금도 종종 그 기억으로 산다.


특히 병원에 재입원하기 전 집에서 당신을 돌볼 때 추억을 많이 쌓았다. 당신은 점점 귀여워졌다. 대부분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작은 방에 먹을 게 있는지 확인하고 오자고 재촉했다. “봐. 없지? 내 말이 맞지?” 눈으로 확인시켜주면 그제야 포기했는데, 창고에 먹을 게 없음을 깨달은 뒤에 시무룩해지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작은 방 창고에 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뒤 돌아오는 그 행동을 우리는 매일 했다.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으면 나보고 얼른 가서 뭐 만드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졸랐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나를 정찰병으로 삼은 것이다. 부엌에서 돌아온 내가 “오늘은 꽃게탕이래”, “저녁은 갈치조림이래” 같은 정보를 건네주면 “와아, 너무 맛있겠다” 하며 진심으로 신나 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면 꼭 “오늘 연포탕인가?”라고 물었다. 문어와 낙지에 꽂힌 상태라 끼니마다 먹어본 적도 없는 연포탕을 찾았다. 한번은 엄마가 진짜 연포탕을 해주었더니 접시에 코 박을 정도로 열심히 먹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또 한참 웃었다. 함께 식사하는 중에 “맛있어?” 물으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한껏 들어올려 열심히 흔들었다. 엄마는 사위의 ‘따봉’을 받기 위해 더 정성껏 요리를 해주었다.


또 다른 최애 음식은 찹쌀떡과 도지마롤이었다. 당신이 찹쌀떡과 도지마롤 좋아한다고 여기저기 이야기했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로 그 음식들이 도착해 냉동실을 꽉 채웠다. 덕분에 당신에게 종류별로 떡과 빵을 먹였다. 간식으로 찹쌀떡이나 도지마롤 하나 쥐어주면 너무 맛있다며 또 따봉을 주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흔들어대는 따봉을 보며 내일 간식 스케줄을 짜는 게 내 하루 일과였다.

당신은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무슨 말을 해도 말끝마다 “네”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는 혼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데 자꾸 화장실에 데려가달라고, 혼자 볼일 볼 수 있다고 우기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이환희 씨, 지난번에 화장실 갔다가 넘어졌죠? 이제 화장실 안 가기로 했죠?”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 당신은 “네”라고 순순히 대답하고 곧 상황을 인정했다. 사실 나 편하자고 화장실에 보내지 않은 것이지, 부축하면 볼일을 보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싶어 직접 볼일을 보겠다고 한 거였을 텐데,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해 나에게 의존하던 당신을 속였다.


당신은 다정하면서도 애정이 넘쳤다. 종일 “지은 씨? 지은 씨!” 하며 하도 나를 찾아서 화장실 문을 반쯤 열고 “나 여기 있지?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외치며 볼일을 보기도 했다. 부르는 소리에 “어어. 간다, 가” 하며 다가가면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며 볼을 꼬집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 왼쪽 볼을 하도 꼬집어서 나중에는 멍이 든 것처럼 얼얼해졌다. 그래도 그 애정표현이 사랑스러워서 기꺼이 얼굴을 내주었다. 나중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꾸만 헛것을 보고 들을 때조차 당신은 나를 찾았다. 한번은 나에게 지은 씨를 찾아달라고 했다. “나 여기 있잖아” 하니 “아니, 지은 씨 말고 지은 씨 저기 밖에 또 있어. 내가 봤어”라고 말했다. 내 앞에서조차 나를 찾다니. 내가 너무 좋아서 그랬을까.


평소 당신의 최대 장점이 밝은 유머였는데, 기억력과 이성은 잃어도 유머만큼은 잃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시아빠가 낚시의자를 구해왔다. 그곳에 반쯤 눕혀 목욕을 시켜주면 당신은 시아빠에게 “좋은데요? 오늘 서비스가 아주 훌륭한데요?” 같은 농담을 건네었다.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좀더 힘껏 웃었다.


병간호가 힘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 당신의 천성 덕분이었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당신은 자기 아픔보다 타인의 기쁨을 더 챙기고 떠났다. 당신답다. 덕분에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한 시간을 얻었다. 돌아보면 당신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했고, 틈날 때마다 웃었다.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 해도 그때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살고 싶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