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9.
2020년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이 내 앞에만 서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몰라 자주 안절부절못했다. 혹시라도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내게 더 큰 상처를 줄까봐 그랬을 것이다. 겨우 쥐어짜 건네는 한마디는 보통 “힘내요”였다. 그럴 때마다 내 상황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 그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얼른 상대가 들으면 안심할 만한 말을 건네는 것이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죠.”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까지 머금은 채 이 말들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서면 불쑥 화가 올라왔다. “힘을 내라고? 여기서 얼마나 더 힘을 내. 한번 겪어보라지, 그 말이 나오는지.” 같은 말들을 중얼거렸다.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힘내느라 이를 하도 악 물어서 어금니가 부러질 정도인데, 조금 더 노력하라는 말로 들렸다. 그때부터 힘내라는 말이 싫어졌다.
종종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밥 잘 챙겨먹고 있지?’ 같은 안부를 묻는 말들로 채워진 위로 또한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내 마음은 지옥인데, 나 역시 상대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니까.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 있으면 계속 침잠할 수 있으니까. 아무런 방해 없이 꾸준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마음은 바늘구멍보다 작아졌다. 환희 씨를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가면 다들 곁눈질했다. 귓등으로 들리는 “세상에, 젊은 사람이...” 같은 중얼거림들. 그때마다 화가 잔뜩 나서 사람 없는 쪽으로 휠체어를 휙 돌렸다. 한번은 계속 환희 씨를 뚫어져라 보는 중년 여성에게 “시선처리 똑바로 안 해요?” 쏴붙인 적도 있다. 어린 꼬맹이들이 달려와서 환희 씨에게 “어디 아파요?”, “할머니예요, 할아버지예요?” “왜 그렇게 된 거예요?” 질문을 잔뜩 던진 적이 있다. 그때 휠체어 앞을 가로막고 그 녀석들에게 “야야, 꺼져. 저리 가” 소리 지르며 밀치기도 했다. 시엄마에게 찬바람 쌩 일며 눈도 안 마주칠 때면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딸이지만 너 너무 무서워.” 뭐라도 하나 걸리면 다 부수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SNS에 낯모르는 이가 행복한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올리면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더 행복했어.’ 사는 게 힘들다는 푸념을 보면 코웃음쳤고, 누군가의 ‘힘들어 죽겠다’ 같은 반농담에는 괜히 화가 났다. 죽겠다고? 지금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죽겠다는 말이 나오나? 나 보라고 올린 것도 아니고 모두가 내 상황을 아는 것도 아닐 텐데, 당시에는 모든 이가 나를 화나게 하기 위해 SNS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속 화를 누그러뜨리고 ‘힘내요’라는 위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모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가 호스피스까지 찾아와주었다. 같이 일한 지 10년도 지난 데다가 함께 근무한 기간도 4개월 남짓이었다. 물론 함께하는 동안 꽤 다정한 사이였지만 이후 10년 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친구가 나를 보러 온 것이다. 근처라는 연락에 의아해하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로비로 나왔다.
나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던 친구는 환희 씨와 나를 직접 그린 그림이 담긴 액자를 예쁜 포장지에 담아 선물로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놀라는 내게 “내 어머니도 교모세포종으로 돌아가셨다”는 고백을 건네었다. 그 말에 의아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동질감이 일어서 그 사람 많은 로비 의자에 마주앉아 한참 울었다. 그가 선물과 함께 건네준 봉투에는 약간의 돈과 짧은 편지가 적혀 있었다. 돌아보면 힘내라고 해준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며, 나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힘내’라는 말이 그 친구에게는 세상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니. 게다가 실제로 그의 ‘힘내’는 큰 위로가 되었다. 자신의 엄마와 같은 질병이라는 이유로 10년 만에 찾아와준 지인이 건네는 위로는 내게 온전히 닿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문제는 나였다. 잔뜩 삐뚤어진 상태라 상대의 진심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24시간 전투 태세였던 탓에 따뜻한 한마디를 들어도 그 안에 담긴 속내를 의심했던 것이다. 그러니 길 가던 중년 여성이나 꼬마 아이들같이 힘없는 이들에게 내 나약한 속마음을 드러냈던 것이고.
오늘은 당신 없는 내 첫 생일이다. 혼자 있을 내가 신경 쓰이는지 많은 이들이 연락을 주어 내 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한 SNS 친구가 남겨준 “힘내라는 말 듣기 힘들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힘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달린 생일 축하한다는 댓글을 보니, 한때 '힘내라는 말이 싫다'던 내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져 보여 민망하다. 나는 마음을 하루에 겨우 1밀리씩 여는데, 내 주변 이들은 이런 이기적인 나마저 양껏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