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4.
1월 4일자로 업무에 복귀했다. 낯모르는 이로부터 “남편 분이 길에서 쓰러지셨어요” 연락받고 정신없이 응급실로 뛰어간 이후 4개월 만에 회사 의자에 앉는다. 회사 물건들을 쓸어 담듯이 들고 나왔던 그날이 아득한 옛날 같다.
출근하자마자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최대한 밝게 보이려 했는데, 잘 돌아왔다고 인사 건네거나 살갑게 안아주는 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이내 얼굴이 일그러지고 금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지그시 손 잡아주는 상대에게 “저한테 다정하지 마세요”라고 투정부렸다. 지금 나는 상대가 다정할수록 더 많이 우는 병에 걸렸으니까. 돌아보니 따뜻한 마음에 ‘고맙다’고 반응했어야 하는데, 또 너무 내 감정만 앞섰다.
컴퓨터를 켰다. 메인화면에는 당신보다 두 달 먼저 떠난 둘째 고양이 리아가 자리 잡고 있다. 리아 뒤에 흐릿하게 우리가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도 보인다. 저때까지만 해도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분명 예상한 불행이었는데 왜 나는 속수무책이었을까. 불행은 내가 열심히 대비한 앞길을 가뿐히 무시하고 샛길로 찾아들었다. 어차피 당할 일이었다면 불안해하며 대비하는 데 시간 쏟기보다는 그냥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더 해주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이제 와서 그런 후회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컴퓨터 왼쪽 벽에 걸린 달력에는 지난 8월에 처리했어야 할 업무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업무 리스트 대부분은 나 대신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마무리한 뒤다. ‘남에게 일 미루는 사람 안 좋게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네.’ 그렇게 달력을 무심히 들여다보다가 싹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읽지 못한 수백 통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시무식을 마치고, 담당 진행사항을 공유받았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 상태라면 열심히 일하는 것은 고사하고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다.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 다짐은 다 어디로 도망갔을까.
휴직을 요청할 때, “휴직이 어렵다면 퇴사시켜주십시오”라고 청했다. 휴직은 공백이지만 퇴사는 다른 누군가가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입사한 지 반 년밖에 안 되었고, 공백이던 옆자리는 이제 막 채워진 참이었다. 내 휴직이 팀 안정화와 회사 매출에 부담으로 작용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민폐를 안 끼칠 수 있다면 퇴직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온정 많은 회사는 나를 내치지 않고 바로 휴직 처리해주었다.
심려 끼쳐 죄송하다는 내 말에 사장님은 “함께 겪어나가는 거다”라고 화답해주었다. 그 말에 눈물을 쏟아내며 허물어졌다. 그나마 이 회사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온정 많은 동료들은 그저 건강하게만 돌아오라고 격려해주었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기도했다. 회사에 복귀했다는 것은 곧 당신이 내 곁에 없다는 의미일 테니까.
결국 당신은 떠났고 나는 복직했다. 땅바닥에 두 발이 온전히 닿지 않은 채 붕 뜬 것 같은 지금 느낌이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것을 안다. 건강 문제로 수술을 앞둔 회사 차장님을 격려하는 편지를 쓴 적이 있는데, 이 글을 오늘의 나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다.
“예능 ‘맛있는 녀석들’에서 복불복 게임을 하는데요, 넷 중에 한 명은 이날 한 입밖에 못 먹어요. 벌칙 당첨자는 늘 ‘오늘 운 없다’고 소리 지르고 짜증내거든요? 근데 2015년 방송한 회차부터 지금까지 평균 통계를 나누면 넷이 벌칙 걸린 회수가 비슷하대요.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사건 하나만 보면 지독히 운이 없는 것 같고, 고통스럽고 억울한데, 막상 지나고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일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거요.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일들이 분명 한때 에피소드처럼 사소해 보이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 쉬는 동안 몸조리 잘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곧 봬요.”
너무 빨리 벗어나려 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침잠하지도 말자. 그저 누구나 겪는 일을 조금 먼저 겪었다고 생각하자. 오늘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