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6.
아직도 무엇이 괜찮은 애도인지 잘 모르겠다. A는 아내를 잃은 지 3년 되었지만 아직까지 그의 옷을 한 벌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장롱은 아내가 떠나기 전 상태 그대로이고, 아직도 둘이 걷던 길을 못 지나치며, 같이 보던 드라마의 완결을 보지 못한다. ‘과거의 오늘’에 자꾸 아내 이야기가 뜨는 게 힘들어서 페이스북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렸다. 집을 옮기고 가게를 처분했으며, 앨범을 전부 찢고 옷을 모두 의류수거함에 놓고 왔다. 시엄마가 당신을 애도하는 방법은 눈물과 기도다. 매일같이 울면서 하느님께 기도한다. 누가 말만 걸어도, 내가 전화로 “여보세요”만 해도 눈물을 터트리신다. 시아빠는 당신의 옷을 매일같이 입고 다닌다. 외출할 때는 물론 잘 때도 당신 옷을 입으시더라. 갑자기 너무 젊게 입어서 하나도 안 어울리는데도 벗지 않는다.
내 애도는 한 마디로 ‘탐험’이다. 나는 당신이 곁에 있었다는 순간을 증명하기 위해 병적으로 당신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그 탐험의 순간이 온전한 기쁨이었다. 당신과 다정한 메시지를 주고받던 순간, 우리 함께 웃고 있는 사진,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속 우리의 에피소드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때로 돌아가 봄처럼 환하게 웃었다. 매일 당신이 남긴 노래를 들었고, 우리의 메시지를 수시로 복기했고, 함께 찍은 사진을 인화해 집 안에 눈길 닿는 곳마다 붙여놓았으며,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꾸만 글을 써 증명했다. 요즘의 나는 대체적으로 무기력한데, 이 행위를 할 때만큼은 여름의 온도만큼이나 열정적이다.
그러나 이 일련의 행위들은 동시에 나에게 당신의 부재를 알리는 분명한 신호다. 사진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몇 번을 쓰다듬어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더는 당신의 작은 어깨를 만질 수 없고, 까끌한 머리털을 쓰다듬을 수 없다는 사실만 증명할 뿐이다.
어제는 이불을 펴다가 내가 아직도 오른쪽으로 쏠려 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늘 왼쪽에서 자던 당신 자리를 비워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왼쪽 자리를 더듬을 때마다 그 서늘한 온기가 당신의 부재를 증명한다. 삶의 모든 부분이 이제 당신은 없다고 말한다. 알면서도 매번 좌절한다. 내 애도의 과정은 행복이자 집착, 불안과 고독이 비순차적으로 이어진다.
종종 낯모르는 이들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는다. 대부분 질병을 앓고 있는 가족과 함께하는 이들이 보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고백하며 내게 조언을 구한다. 나도 애도 중인데 그 진지한 메시지에 뭐라고 답변해야 하나 싶다가도 어떤 마음으로 연락했을지 너무 잘 아니까 쉽게 무시하기도 어렵다. 나는 그저 그들이 애도의 시간을 잘 견디기를 빌면서 내게 위로가 되었던 말들을 돌려준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돼요”, “여기서 50년이 거기에서는 5분이래요” 같은 것들.
오늘은 영화를 보다가, 헤어졌다가 재회한 인연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사랑해줘요”라고 말하더라. 그 문장을 들으며 ‘저 사람이 바라던 걸 당신은 받고 갔네. 내가 당신을 죽는 순간까지 사랑해주었잖아’라고 중얼거렸다. 당신이 내 앞에서 서서히 죽어갔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까지 온전히 나와 함께했다. 우리의 이별은 어쩌면 50년이 넘도록 계속되겠지만, 그 지난한 시간이 당신에게는 5분뿐이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픈 시간은 나만 가지면 된다는 사실이 일말의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