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9.
천주교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다는 연옥에서 일정 기간 영혼을 정화한 뒤에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선하게 살았을수록,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기도할수록 영혼이 연옥에 있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을 살려달라고 빌던 시엄마는 이제 당신을 천국으로 보내기 위해 새벽마다 부엌 구석에 쪼그려 앉아 기도한다. 당신이 떠났어도 시엄마의 노력은 끝나지 않는다.
엄마는 불교 신자다. 엄마는 병원 안에 갇힌 딸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기 위해 하루 한 번씩 도시락을 싸다가 날랐다. 집에서 병원까지 도보로 30분 거리. 엄마는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을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을 속으로 몇백 번쯤 외치다 보면 어느새 병원 앞에 당도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다시 산다는 희망도 없는데, 저리 고통스러워하는데 이제 그만 데려가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시엄마는 임종방에 있는 당신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아들, 얼른 벌떡 일어나라, 얼른 일어나!” 외쳤는데, 엄마는 “환희야, 이제 그만 가도 괜찮아. 힘들었던 거 다 내려놓고 훨훨 날아가도 돼”라고 속삭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환희 씨 너무 혼란스럽겠다’ 생각했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엄마와, 사위를 얼른 데려가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하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대결.
하느님과 부처님 가운데 누가 더 힘이 센지는 모르겠다. 두 엄마 덕분에 당신이 두 신의 보필을 동시에 받았다는 것만 중요하다. 덕분에 당신은 분명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다.
어제는 당신의 사십구재였다. 사십구재는 불교에서는 사후 의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일곱 밤을 일곱 번 지나면 오는 그날에 영혼의 다음 행보가 결정된다. 남은 이들이 기도를 많이 할수록, 그의 영혼이 좀더 깨끗할수록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높은 경지는 성불, 즉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영혼이 순백이라면 성불할 테고, 성불한다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불자들은 죽은 이가 성불하기를, 다시는 이 힘든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마음으로 기도한다.
천주교에서 제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시엄마는 당신 삼오제 때 그 어떤 다과도 준비하지 않았고, 엄마와 내가 준비했던 간식도 함께 나누어 먹지 않았다. 불교 신자인 우리 엄마는 그런 시엄마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환희를 위해 한 입만 먹어주지.’ 삼오제 때 음복을 거부하는 시엄마를 보고 우리 엄마는 ‘분명 사십구재도 안 챙겨주겠네’ 싶었나 보다. 혼자라도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당신에게 가려 했다고 한다.
당신과 나도 천주교 신자이지만 엄마 덕분에 당신은 분명 부처님의 은덕도 받았을 것이다. 혹시 사십구재를 안 챙겼다가 부처님이 잘 몰라서, ‘세상에 미련 없으니 더는 다시 태어나서 힘들고 싶지 않다’던 당신을 이 세상에 환생시키면 어쩌나. 아니면 연옥에 있다가 ‘나 아내가 밥 차려준대요. 챙겨먹고 올게요’라며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내려왔는데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쫄쫄 굶으면 어쩌나. 또 오랜만에 아내 본다고 신났는데 나는 안 오고 장모님만 있으면 서운하지 않을까. 곰곰 고민하다가 휴가를 내고 당신을 보러 가기로 했다.
영정사진과 당신이 좋아하던 초코파이, 주스, 샤인머스캣을 들고 수목장으로 갔다. 엄마가 오기 전 당신 앞에 다과를 차려놓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당신 없는 동안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일도 있었다고 경과보고도 하고, ‘누구누구가 안부 전해달래’ 말도 전하고, 당신 너무 보고 싶어서 가끔 운다고 투정도 부리고, 나는 당신이 안 보이는데 당신은 나 매일 볼 수 있냐, 여기는 눈이 엄청 왔는데 거기도 눈이 오냐, 거기는 춥지 않냐 등 궁금한 것도 물어보았다. 혼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중얼거렸더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
엄마와 동생이 도착하고 간단하게 제사를 지냈다. 이날은 하느님 대신 부처님께 빌었다. ‘저희 남편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저희 천국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부처님도 본인 신자 아니니까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겠지.
당신 떠난 지 49일이 지났다. 당신 없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나 싶었는데, 이렇게 두드러짐 없는 날을 계속 견디다 보면 당신 만날 날도 금방이겠구나 싶다. 우리 만날 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리아 앞발 꼭 붙잡고 천국에서 함께 기다리고 있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