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벌 주기

21.01.10.

by 아나스타시아

“밥 잘 챙겨먹어. 너 아껴줄 사람 너밖에 없잖아. 나중에 너한테 미안해질 거야.”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밥을 사주면서 이런 말을 건넸다. 그는 모른다, 혼자 살아남아서 꾸역꾸역 밥을 먹는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환멸을. 게다가 나는 나에게 미안하지 않다. 오히려 벌주고 싶을 뿐이다.


당신이 머리가 아프다고 끙끙거리면서도 출퇴근하던 나날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당신을 원망했다. 당시에 지칠 대로 지친 당신은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상태’라고 했다. 기운 없는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당신이 안쓰러워 집안일과 리아 병간호를 자처했다. 가사일을 내가 전담하면 당신의 여가 시간이 늘어날 줄 알았는데, 당신은 내가 만들어준 그 시간을 더 많은 일거리로 채웠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넘어오는 집안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당신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다가 다 식어버린 밥과 국을 혼자 넘겨야 하는 날이 자꾸만 늘어났다. 잘 견디던 리아마저 다시 토를 시작했고, 이제 보내줄 준비를 하라는 소식을 들은 4월, 나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예민한 마음은 ‘덜 힘든 사람이 더 하면 되지’라던 배려를 순식간에 ‘왜 나만 이러고 있지’라는 원망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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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브런치에 <평등한 결혼은 왜 이리 힘든가>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그 글에 따르면 나는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럴 바에는 나 혼자 사는 게 낫지 않나.’


이 문장은 적은 지 7개월 만에 실제가 되었다. 내가 적은 문장이 사실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그 글을 썼을까. 당신 앞에서 이런 생각을 품고, 일 좀 그만하라고 짜증내고, 리아 좀 같이 돌보자고 하소연했을까. 아픈 당신을 들쳐 업고 병원에 가지 못할망정 이런 잔인한 상상이나 하고 앉아 있던 나를 용서하기 힘들다. 나는 좀더 고통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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