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1.
“누군가 죽으면,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세워지는 앞날의 계획들(새로운 가구 등등): 미래에 대한 광적인 집착.”
- 롤랑바르트, <애도일기>, 16쪽.
말기 뇌종양 환자에게 보호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는 말도 움직임도 모두 잃었고 그저 겨우 숨만 쉴 뿐이다. 음식은커녕 물 한 방울 넘기지 못한다. 죽음이 당신을 잡아먹을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시간. 보호자는 그저 욕창이 생기지 않게 두어 시간마다 몸을 옮겨주고, 아침저녁 젖은 수건으로 머리와 몸을 씻기고, 개구호흡을 하는 입안이 마르지 않게 가재수건으로 입을 닦아주고, 스프레이에 물을 담아 종종 입안에 뿌려주고, 숨쉬기를 힘들어하면 간호사를 불러 진통제 처방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가끔 전화기를 귀에 대주거나 편지를 읽어줄 수는 있지만 힘들어할까 싶어 오래 붙잡고 있지는 못한다. 그저 당신이 숨 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끔 말 붙여보고, 기도실에 가서 “저희 부부에게 오늘 하루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장례식에 온 친구에게 나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강아지나 키워야 할까 봐요.”
남편이 죽었는데 웬 강아지 타령인가. 그날 수많은 이를 만나 아무 말이나 던졌고, 저 말도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말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저 말을 한 기억은 없지만 어떤 생각의 회로를 거쳐 그 말이 나왔는지는 알 것 같다. 호스피스 병동의 3주가 당시 내게는 한없이 지루하고 길었다.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간병인 대부분이 나보다 최소 스무 살은 더 많을 법한 분들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 그이야 살 만큼 살았지만 자기네는 어쩌니" 하며 혀를 끌끌 차는 게 그렇게 싫었다. 밥을 데우러 전자레인지가 있는 보호자실에 가면 옆방 간병인이 꼭 내게 물었다.
“아직도 그대로이신가?”
그 말이 꼭 “아직 안 죽었어?”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 간병인은 오전 7시, 낮 12시, 저녁 6시 시간에 맞추어 식사했는데, 그 질문을 받기 싫었던 나는 일부러 그 시간보다 30분 늦게 밥을 데워 먹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싶어서 보호자실에서 맨날 휴대전화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병실에 돌아오면 그저 멍하니 누워 있거나 앉아서 밤이 올 때까지 당신 얼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해 입양을 기다리는 반려동물 사진을 들여다보고 부동산으로 내후년 이사갈 집을 알아보았다. ‘여유가 생기면 강아지를 입양해볼까’, ‘내후년 전세 기간이 끝나면 집을 좀 좁혀서 이사를 가볼까’, ‘엄마랑 같이 사는 건 어떨까’ 같은 상상을 펼치곤 했다. 친구에게 건넨 “강아지나 키워야 할까 봐요”라는 말은 이때 내가 아무렇게나 했던 상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당신이 없는 삶은 내게 큰 구멍을 남겼다. 그 구멍은 한없이 커져서 이제는 내가 아끼고 가꾸어왔던 삶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중이다. 나는 당신이 가기도 전부터 그 구멍의 크기를 예상했다. 그리고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채울 만한 요소들을 찾아 헤매었다. 남들 앞에서도, 심지어 스스로를 앞에 두고서도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던 나는 한편으로는 당신 없는 삶을 남몰래 혼자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다. 우습게도 숨만 겨우 붙어 누워 있는 당신 앞에서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당신 없는 새로운 삶을 혼자 구상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잘살려고 그랬을까. 그 시간에 당신 손 한 번 더 잡아주었어야 하는 것을. 당시에도 이런 스스로가 참 잔인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그때의 나를 경멸한다.
어제는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찾아 읽었다. 편지 안에는 매번 나이 들어서도 지금처럼 서로를 보듬어주자고, 서로의 몸 뉘일 곳, 마음 쉴 곳을 마련해주자고 약속하고 있었다. 편지는 당신이 내게 미래이자 꿈이었다는 증거였다. 우리가 꿈꾼 미래에 한쪽의 부재는 없었다. 당신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내 온 우주가 사라진 것이다. 이 큰 구멍을 어떻게 막겠다고, 나는 당신을 앞에 두고 무려 ‘계획’씩이나 세우고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