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을 절대 모른다

21.01.14.

by 아나스타시아

시엄마도 그렇고 우리 엄마도 그렇고, 흔히 부모는 자기 자식을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본인 속으로 낳았어도 자식은 엄연히 다른 인격체다. ‘내 속으로 낳았는데 내가 왜 모르겠어’라는 생각이 오히려 본인 자식을 갉아먹는다고 보는 게 옳다.


시엄마는 “아후, 나는 못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하는 타입이다. 문제는 당신이 ‘못 한다’고 나자빠진 그 일을 다른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엄마가 백기를 들 때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약 한 달 반의 방사선 치료기간 동안 우리 집에 살면서 월화수목금 당신 병원 출퇴근과 운동을 담당했고, 회사에 간 나를 대신해 암 부작용으로 밥 먹기를 거부하는 리아를 돌보았으며, 환자가 사는 집은 깨끗해야 한다며 매일같이 온종일 우리 집안을 쓸고 닦았다. 또 당신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9월부터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10, 11월, 이 세상을 떠난 11월 말까지 엄마는 시아빠와 함께 우리 집에서 불편한 동거를 감행했다. 우리가 호스피스로 들어간 동안에도 딸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야 한다는 이유로 빈 집을 지켰다. 게다가 11월 말 당신이 떠나고 12월이 다가왔는데도 엄마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토록 무리한 덕분에 아직까지 엄마는 무릎에 파스를 달고 산다.


시엄마는 장례식장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아는 사람이 올 때를 제외하고 종일 작은 방 안에 틀어박혀 기도만 했다. 기도도 중요하지. 근데 오는 손님들 접대는 누가 하라고. 나는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들과 맞절을 해야 하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내 동생은 부조를 담당했다. 일손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을 날랐다. 혼자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엄마를 멀리서 지켜보며 또다시 시엄마를 원망했다.


엄마가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본 상조회사 도우미 분이 엄마에게 “아버님은 어디 계세요?”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엄마가 몇 년 전에 사고로 돌아갔다고 하니 그분이 “에흐, 언니 팔자도 참”이라고 읊조렸다. 그 한숨이 너무 기분이 나빴다고, 자기 팔자 때문에 남편도 사위도 잃었다는 말 같아서 화가 났다고 말하는 엄마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엄마에게 사위 병간호와 고양이 병간호, 장례 부엌일까지 도맡게 한 상황에 이제는 팔자 이야기까지 듣게 하다니.


상을 치르자마자 엄마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했다. 나 때문에 여기 붙잡혀 있지 말라고, 엄마도 이제 엄마 일상을 찾아가라고 말이다. 엄마는 내 걱정에 발을 못 떼겠다며 “너 밥 좀 먹이고”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집으로 가라고 두어 번 권유하다가 포기했다. 안다. 딸 혼자 남겨놓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밥이라도 챙겨주고 온기라도 나누어주면 남편 잃은 딸의 허전함을 조금은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 선택은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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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엄마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 당신 딸은 독립심이 강하고 엄마 앞에서는 죽어도 힘든 티를 내지 않는 타입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엄마의 돌봄노동을 밟고 내 슬픔을 이겨내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둘이 있는 동안 눈물을 꾹 참았고, 밤이 내려오고 잠을 청하기 위해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만 숨죽여 흐느꼈다. 한번은 밥을 먹는데 엄마가 말을 건네었다.


“울고 싶으면 소리 내서 울어도 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번은 밥을 먹다가 음식을 조금 흘렸다. 손등으로 턱을 닦는데, 순간 내 턱 밑으로 휴지 한 장이 쑥 들어왔다. 엄마였다. 그 순간 참았던 화가 터져 나왔다.


“제발 나한테 오감을 다 열어놓지 말라고!”


놀란 엄마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날 오후,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두어 주 함께 있어준 내가 그렇게 고마웠다고, 그래서 엄마도 내게 그렇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제야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그저 나 혼자 마음껏 울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엄마가 곁에 있으면 나는 울 수가 없다고. 엄마는 한마디했다. “그래, 내가 네 성격을 간과했네.” 다음 날 엄마는 짐을 꾸려 본인 집으로 돌아갔다.


호스피스 병동에 놀러갔을 때 수녀님께 이 이야기를 했다. 수녀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주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는구나”라고 대답하셨다. 그러게. 시엄마가 우리 엄마 힘들게 한다고 그렇게 열을 냈으면서, 나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못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말았다. 더는 불효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던 거였는데, 그 말을 하는 과정에서 더 큰 불효를 저질러버렸다. 내 이 어리석음을 어쩌면 좋을까. 앞에서 ‘부모는 자식을 전혀 모른다’고 했는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식 또한 죽어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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