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당신을 살리는 법

21.01.15.

by 아나스타시아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가. 죽음은 사람을 어디로 이끄는가. 종종 당신이 떠난 그 길을 상상해본다. 지금의 나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낯선 그곳을 당신은 어떤 심정으로 건너갔을까. 겁도 많고 무서움도 잘 타는 당신이기에 낯선 그 길을 잘 건너 하늘나라에 무사히 도착했을지 아직도 걱정이다. 겁 많은 당신의 안내자를 자처하기 위해서 우리 용감한 리아가 그렇게 조금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게 아닌가 싶다. 낯선 길이 두려운 형아 대신해 조금 앞장서주지 않았을까.


당신의 죽음은 수많은 감정의 구덩이 속에 나를 수시로 빠뜨렸다가 다시 일상으로 밀어 올려놓는다. 그 구덩이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좌절과 분노, 슬픔, 회환, 후회, 절망 같은 것들. 당신이 떠나기 전까지는 대체로 분노와 후회를 오갔던 것 같다. 애써 미뤄두었던 슬픔이나 절망, 좌절 같은 감정은 당신 죽음 이후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당신을 사이에 두고 시엄마와 실랑이를 벌일 때였다. 한 사람의 죽음이 두 여성에게 안겨준 거대한 상처를 시아빠는 어떻게든 봉합하려고 애썼다. 엄한 시아빠를 붙잡고 시엄마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지금 어머니는 저한테 투정 부리는 거밖에 안 돼요. 본인 마음대로 소리 지르고 발작 일으켜도 옆에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으니까, 본인이 쓰러지면 누군가 붙잡아준다는 사실을 아니까 저러시는 거라니깐요. 저는요, 아무것도 없어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요. 근데 왜 자꾸 환희 씨를 빼앗아가려고 하냐고요!”


내가 마구 쏟아내는 분노를 가만히 듣던 시아빠가 속내를 이야기했다. 시아빠는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을 고민했다고 한다. 병간호를 하고 이 고난을 함께 견디면서 우리가 좀더 단단해지길 바랐다고. 시엄마의 건강 문제와 나의 예민함으로 그 방안은 어그러졌지만 시아빠는 여전히 우리가 화해하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환희가 가고 나서도 우리가 함께 모여 환희 이야기를 나누면 얼마나 좋으니. 그게 환희가 영원히 사는 길이야.”


시아빠의 말처럼 고부가 화해해야 죽은 당신이 살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의 엄마를 사랑하지 못해 당신을 다시 한 번 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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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당신을 살리고 싶다. 따뜻하고 다정하며 타인의 아픔에 마음으로 공감하던 당신을 만지고 싶다. 당신의 몸은 이미 가고 없지만, 당신의 마음만은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뜻을 내가 이어간다면 당신이 계속 살아 있는 셈 아닐까.


당신 명의 계좌에 있는 돈을 찾기 위해 은행에 들렸다가 발견했던 수많은 후원계좌들이 기억났다. 암 때문에 휴직했어도 끊지 않아 당신 계좌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그 후원처 목록을 다시 뒤졌다. 인천사람연대, 녹색당, 정의당,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프레시안, 사단법인노들, 정치발전소, 언론노조, 청소년 위기지원센터 띵동, 천주교인권후원회 등. 당신이 믿고 지켜나가려 했던 가치들이 한눈에 보였다. 하나하나 연락해 당신 대신 후원을 이어가기로 했다. 가입동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곳을 후원하던 이환희 씨 뜻을 기리기 위해 가입합니다.”


당신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나 역시 그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당신 앞에서 약속하기도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 당신 귀에 대고 이런 말을 속삭였다. 당신이 없는 동안 당신 몫만큼 살겠다고.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나면 나 당신 없는 동안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다고 쉴 새 없이 재잘거릴 테니까 “아이코, 그랬구나. 잘했네, 우리 자기. 너무 잘했네” 하고 머리 쓰다듬어달라고. 그리고 당신도 나 없는 그곳에서 나만큼 재미있고 신나게 지내서 다시 만났을 때 뭐하고 있었는지 하나하나 자랑해달라고. 그 자랑 내가 다 들어주겠노라고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쁜 감정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마다 당신에게 한 약속을 떠올린다. 나는 당신 없는 이곳에서 당신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또한 당신에게 자랑할 만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겨진 나와 떠나간 당신이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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