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7.
대부분 임종 맞이하는 순간을 대면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호흡이 잦아들고 마지막 숨을 내쉬며 머리를 떨구는 장면을 드라마 영화에서나 접했지, 영면에 드는 순간을 정면으로 맞이한 적은 없었다.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도 전화로 통보받았고, 아빠 또한 내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가까운 사람의 임종 순간은 당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드라마 영화와 전혀 달랐다.
3년 전 달리는 응급차 안에서 목숨을 잃고 세상을 떠난 아빠를 볼 때는 ‘사람 목숨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하찮은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의 죽음은 이 반대의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사람 목숨은 정말 쉽사리 삭지 않는 고무줄보다 더 끈질기다. 당신과 함께 호스피스로 들어갔을 때 임종 직전 사람의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사전 정보 없이 병원에 들어갔다. 병원에서는 안 좋은 증상 하나만 나타나도 “임종 징후예요”라고 이야기했다. 임종 직전임을 알리는 신호는 너무 다양했다. 무호흡이 생겨 1분에 숨을 네 번밖에 쉬지 않을 때, 심장 박동이 분당 170회까지 올라올 때, 온몸에 열이 38, 39도까지 올라 쉽게 떨어지지 않을 때, 코가 아닌 입과 흉통으로 숨을 쉬기 시작할 때, 소변 양이 갑자기 100밀리 이하로 줄어들 때, 한쪽 동공이 풀려 반응이 멈춘 순간, 손끝과 발끝이 멍이 든 것처럼 새파래졌을 때, 호흡하는 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을 때마다 병원 관계자는 내게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아요”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때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어 당신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곤 했다.
흔히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는 4인실로 입원했다가 나중에는 임종방이라 불리는 1인실로 옮긴다. 이 방으로 옮겼다는 것은 즉 병원에서 환자가 일주일 내외로 세상을 떠난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우리는 오전에 임종방에 들어갔다가 저녁때쯤 다시 호흡이 안정적이라며 4인실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당신은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죽지 않고 열흘쯤 더 보냈다. ‘정말 오늘인가 보다. 이보다 상태가 더 나빠질 수는 없겠다’ 생각하면 그보다 더 나쁜 상태로 하루를 기어이 살아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다가오는 아슬아슬한 잠깐의 평화. 호스피스 안에서의 나날은 하루가 총알만큼 빠르면서 동시에 달팽이 걸음만큼 지난했다.
임종방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 무렵, 당신은 입으로 숨을 쉬어서 입술이 생선껍질처럼 굳고 부드럽던 혀도 백태가 껴 딱딱해졌다. 가래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힘들어하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흉곽 전체를 들어 올렸다가 내쉬기를 반복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데 대체 무얼 기다리고 있니. 당시에 당신의 휴대전화 속 노래 플레이 리스트는 윤종신의 <내일 할 일>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 노래가 꼭 당신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 같았다.
"안녕 오랜 나의 사랑아 내일 슬프지 않기로 해. 마지막은 기억에 남기에... 우리 편하게 내일 이별해."
그 모습에 안타까워하다가 ‘혹시 내가 가란 말을 안 해서 못 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이미 나에게 <내일 할 일>을 들려주고 있지만 나는 당신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차마 건네지 못한 상태였다. 사실 이 생각을 한 지는 꽤 되었는데, 차마 내 입으로 가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서 당신을 간호할 때 당신은 우리 엄마에게 “지은 씨는 자꾸만 저만 놔두고 훨훨 날아가요. 나는 못 나는데 나만 놔두고 자꾸만 혼자 날아가요”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 말 때문인지 엄마는 자꾸만 당신 귀에 대고 “이제 그만 가도 돼, 환희야. 이제 훨훨 날아가”라고 속삭였다. 호스피스 병동에서조차 당신을 포기 못하던 시엄마는 두 손으로 당신의 온몸을 비비고 눈꺼풀을 뒤집어 까며 “일어나라, 내 아들. 하느님 성모님 손 붙잡고 머릿속에 있는 암 세포를 하느님의 세포로 바꾸어서 얼른 벌떡 일어나!”라고 큰소리로 당신을 불렀다. 나는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었다. 당신에게 빨리 가라고 등을 떠밀 용기도 없었고,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얼른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울 이기심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멈추길 바랐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만 더 허락해달라고 기도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당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환희 씨, 내 남편, 너무 힘들지. 나 때문에 견디는 거면 이제 가도 돼. 나 정말 괜찮으니까, 리아랑 당신이랑 거기서 기다리면 나랑 웅이가 금방 따라갈 테니까 먼저 가서 푹 쉬고 있어. 거기 가면 힘들지도 아프지도 않대.”
그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간호사가 당신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왔다. 그분께 “전 이제 눈물도 다 마른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내 말을 들은 그분이 언젠가 입원했던 우리 나이 또래 부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통 젊은 환자는 상태가 순식간에 확확 나빠지다가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환자는 당신처럼 겨우겨우 하루하루 버텼다고 한다. 기어이 버티는 배우자를 바라보던 보호자 분이 언젠가 나와 똑같이 “이제 눈물이 말라서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한 다음 날 환자가 떠났다고 한다.
“아마 배우자 분이 마음의 준비를 끝내기까지 기다리셨던 게 아닐까요.”
간호사와 그 이야기를 나눈 지 만 하루 만에 당신은 세상을 떠났다. 당신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에는 나와 또 다른 간호사 한 분만 함께했다. 당신도 내 입에서 “이제 가도 돼”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기다렸던 것일까. 내 마음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힘들게 버텨냈을까. 정말 당신은 마지막까지 고마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