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혼란 속에서 홀로 단호했던 이유

21.01.19.

by 아나스타시아

종종 병문안 온 당신의 친구나 친척 들이 내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건네었다.


“그 의사, 괜찮은 의사인 거 확실해요? 뇌종양으로 유명한 다른 큰 병원에 데려가보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 의사는 수술을 포기했어도 다른 의사는 다르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때마다 나는 “아니에요. 이미 뇌 안쪽까지 다 퍼진 종양을 MRI로 확인했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해 상황을 정리했다. 내 강경함 때문인지 다들 그 말을 두 번 언급하지는 않았다. 자꾸만 당신의 삶을 정리시키려는 나에게 시엄마의 친한 신부님 한 분이 내 손을 꼭 붙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매님은 지금 다 포기한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돼요. 의사가 더는 못 산다고 말했다고 해도 우리는 믿음을 잃으면 안 되는 겁니다.”


신부님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분이 잘못 아셨다. 나는 한 번도 당신을 포기한 적이 없다. 만약 내가 당신을 포기했다면, 상주에서 시엄마와 소리 지르며 싸울 때 시엄마를 밀쳐버리고 당신이 쓰러지든 말든 내버려두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냅다 달렸을 것이다.


수술을 포기하고 상주에 내려갈 때 시엄마는 내게 “시한부 인생이 아니고 다 나았다 생각하고 치유과정에 있다고 생각하자. 하루에 ‘감사합니다’를 5만 번 되뇌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의학박사의 경험이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답했다. ‘감사합니다’를 5만 번 외치면 뇌 안쪽까지 퍼진 암세포가 사라지나? 이마에 내천 자를 그리며 바로 반박 문자를 써서 보냈다.


“저는 어머니가 환희 씨와 이별할 시간을 선물하려고 가는 거지 치료하러 가는 게 아니에요. 남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환희 씨 생각도 마찬가지라고 믿고요. 어머니 마음 이해 못 하는 거 아니고, 저도 마찬가지로 힘이 듭니다. 그래도 환희 씨에게 뭐가 제일 좋은 것인지 생각하면 답은 분명합니다. 저희 가족이 존엄하게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뒤늦은 후회이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그때 상주로 향하던 차를 돌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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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냉정해 보이는 내 행동이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는 자의 일반적인 반응은 아닌가 보다. 많은 이들이 내 결심에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은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시엄마처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끌어다가 시도해본다는 것이다. 글쎄. 나는 그저 현실을 인식했을 뿐이다.


병이 진행하는 동안 당신 가장 가까이에서 상태를 계속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당신은 하루가 다르게 다리 힘이 빠져 자꾸 넘어져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었다. 또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고,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들었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걸 가장 두려워하던 사람이 새벽에도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며 우는 모습까지 매일같이 지켜보았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던 그 행동들이 의사의 시한부 진단을 받으면서 확신으로 변했을 뿐이다. 우리에게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확신. 그리고 무엇보다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기적을 바라며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거나 증명되지 않은 각종 민간요법을 시도하느라 고통받다가 떠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당신이 아프기 전 언젠가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신은 살면서 하고 싶은 것도 웬만큼 다 해보았고 생에 미련도 욕심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가망 없는 삶이라면 되도록 존엄한 죽음을 택하고 싶다고 말했다. 불치병으로 병실 안에 누워 수많은 줄을 매달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하루씩 연장하는 상태가 될 때까지 자신을 놔두지 말고 스위스로 데려가 존엄사를 선택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병실 안에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생애 마지막은 그간 살아왔던 생기 있던 나날마저 빛을 발하게 만들 테니까. 비록 당신을 스위스에 데려갈 수는 없었지만 존엄한 죽음만큼은 내가 만들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자꾸만 훼방을 놓는 시엄마는 우리가 예상 못한 복병이기는 했지만.


시엄마처럼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유일한 기준은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모든 행동과 말과 태도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당신이 편안해할지 아니면 힘들어할지 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내 앞에서 내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안아주는 당신을 웃게 만드는 것만이 그 당시 내가 가진 유일한 목표였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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