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의 첫사랑을 질투하는 찌질함

21.01.20.

by 아나스타시아


나는 당신이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던 애정의 대상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나를 만나기 전 당신은 ‘외로움 때문에 연애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연애에 최대한 신중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나에 대한 마음을 키워갈 때 선뜻 먼저 다가온 이성도 몇 있었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당신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당신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니 금세 포기했을 법도 한데, 당신은 적당히 호감 있는 상대와의 연애 대신 쓸쓸한 외사랑을 택했다. 당신이 기다려준 덕분에 우리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친구 시절에 나는 우리가 미래를 함께하리라는 사실을 꿈에도 예상 못 한 채 당신 앞에서 내 수많은 사랑의 역사를 줄줄 읊었다. 당신 앞에서 다른 사람과 연애의 사계절을 보여주는 극한 체험까지 시켰다. 연인 시절 언젠가 당신은 내게 “나도 연애 좀 많이 할 걸 그랬네” 중얼거린 적도 있다. 그때 뭐라고 대꾸했더라. “억울하면 연애 좀 하고 돌아오든가”라며 놀렸던가. 약간의 질투와 서운함이 섞인 투정이었을 텐데, 그걸 못 달래주고 대충 웃으며 넘겨버렸던 것 같다.


사실 내 이전 연애들은 숫자만 많았지 당신이 질투나 서운함을 느낄 만큼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당신과 반대로 나는 연애를 대충 호감 정도만 있어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고, ‘혼자 있으면 아무나 추근댄다’는 이유로 정말 아무하고나 사귀다가 대충 흐지부지 헤어진 기억도 여러 번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몇 명이나 만났는지 이름도 다 기억나지 않고 머릿속에 그럴듯하게 각인된 연애도 몇 되지 않는다. 질 낮은 연애의 연속이었다.


질 낮은 연애들이 준 선물이 하나 있다. 당신을 곧바로 알아본 것이다. 연애 3개월 만에 당신에게 결혼을 제안했던 이유는 당신처럼 꼭 맞는 이를 만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친구 가운데 하나는 내게 “사랑은 맞추어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포기하는 과정 같다”고 말했다. 힘들게 포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맞는 짝을 만난 나는 그 친구 앞에서 우월감을 느꼈다.


당신의 질투와 서운함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한 대가일까. 아니면 당신 허락 없이 당신 계정으로 글을 훔쳐본 결과일까. 요즘 나는 당신의 옛사랑에 대한 기록들을 들여다보며 혼자 속 쓰려 한다.


당신이 열아홉 살부터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에 써놓은 글들을 한글 파일에 긁어 모았더니 2,080쪽이 나왔다. 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당신의 글을 읽는 동안에는 당신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 문제는 당신은 외로울 때마다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내가 당신을 모르던 시절의 그 글들은 대부분 연애의 달고 쓴 맛에 대해 적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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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당연히 첫사랑이 있었다. 신중하게 연애하다 보니 만남과 헤어짐에 타격이 큰 타입이었다. 한번은 헤어지고 너무 힘들어서,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일 운동만 하다가 오히려 몸이 축나는 바람에 많이 아팠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아팠을까’ 하며 안쓰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독한 첫사랑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추억 나누듯이 들은 것과, 당신의 문체로 그 대상이 준 기쁨과 슬픔을 그려놓은 글을 읽는 건 다른 문제다. 나에게만 향하던 애정의 메시지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향한 적이 있음을 구체적인 언어로 마주할 때 알 수 없는 질투와 실망, 연민 등의 감정들이 묘하게 뒤섞여 내 안에 피어올랐다. 당신이 즐겨 부르던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가 그 친구가 전화를 걸면 나오는 컬러링임을 알았을 때는 나도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그와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그토록 자주 듣고 불렀다고?


게다가 당신의 첫사랑은 10대 시절의 당신을 한 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가 20대 시절의 당신을 행복의 극한까지 몰아넣은 다음에 다시 지옥으로 빠뜨리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 시절 당신에게 감응해 당신이 울 때마다 따라 울었다. 수많은 글에서 당신은 죽었다가 살아났다가 다시 죽어버버렸고, 나는 그 희비극을 따라 읽으며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가 끝내 죽었다.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당신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준 그를 함께 미워했다. 그러고는 이내 당신의 글들을 게걸스럽게 찾아 읽어낸 내가 미워졌다.


아는 언니는 내게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는 없어”라고 조언하며, “앞의 글들 다 버리고 너를 만난 순간부터만 읽어”라고 충고해주었다. 맞다. 아무리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했다 해도 과거의 당신까지 받아 안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다. 내가 당신의 글을 훔쳐 읽는 이 행위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왜 나는 상처받으면서도 그 글을 계속 읽어나간 것일까. 알면서도 자꾸만 당신의 옛 글을 먹어치운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을 복원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내가 만나지 못했던 순간의 당신과 내가 사랑한 순간의 당신, 그리고 더는 만날 수 없는 미래의 당신을 상상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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