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1.
재택근무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내 취향의 노래를 종일 크게 틀어놓고 일해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노래는 ‘이환희 취향’이지만, 이제 내 취향은 전부 당신의 것으로 대체되었으니 큰 상관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것이다. 당신이 자주 듣던 음악 CD나 디지털 음원 가운데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틀어놓는다. 오늘은 점심 먹고 설거지할 때 즈음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정준일의 <안아줘>가 흘러나왔다. 지금은 익숙한 목소리지만, 그를 처음 안 건 우리 연애 시절에 당신이 들려준 음악 덕분이었다. 그때 우리는 정준일의 <고요>를 같이 듣다가 가사의 어느 부분을 가장 슬프다고 느꼈는지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가만 있으면 아직 애인이죠”가, 당신은 “일부러 너의 반대로 한없이 걸을게”가 그렇게 슬프다고 했다. 누군가의 이별 이야기를 담은 가사였을 텐데 우리는 그저 그 노래를 살짝 미소 지으며 들었다. 우리는 그 노래 속 연인처럼 헤어질 일이 없으리라 굳게 믿던 시절이었다.
스피커 밖으로 흘러나오는 정준일의 목소리가 너무 애절해서 잠시 멍해졌다. <안아줘>라는 노래 제목 때문인지, 우리가 주고받은 문자에 있던 내 등을 껴안고 잠을 청할 때가 가장 좋다던 당신의 그 메시지가 생각났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 등을 껴안아준 게 언제였더라. 설거지 더미를 더듬으며 주억거리다가 결국 날카로운 칼끝에 엄지손가락을 베었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다. 얼른 엄지손가락 위에 휴지를 가져다 대고는 한참 가만히 서 있다가 새삼 이런 내 모습이 낯설어졌다. 당신을 찾지도 않고 혼자 침착하게 피를 닦고 휴지로 상처를 가리는 내 모습이, 더는 내 일상에 당신이 없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나는 손을 베자마자 큰 소리로 “자기야, 나 손 베었어” 하고 당신을 불렀을 테고, 당신은 바로 달려와서 두 손으로 내 엄지손가락을 감싸고는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 앞에 엄살을 부리다가 이내 남은 설거지더미를 당신에게 맡기고 환자라는 핑계로 침대에 가서 드러누웠겠지. 이제 나는 다쳐도 큰 소리로 당신을 부르지도 않고, 엄살을 부릴 수도 없으며, 남은 설거지더미를 미루지도 못한다. 더는 내 등을 기꺼이 안아줄 사람도 없다. 오늘의 조용한 소동은 이 사실을 분명히 해주었고, 내 침착함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우리의 이별을 내가 이제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