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죽지 마

21.01.22.

by 아나스타시아

이상한 날이었다. 웅이는 새벽 4시부터 수어 분마다 나를 깨우러 왔고, 몸을 일으키기 힘들던 나는 결국 웅이에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겨우 일어난 시간은 8시 50분. 아무리 재택근무라 출근에 소요되는 시간이 없다고 해도 너무 늦게 일어났다. 서둘러 안방 커튼을 젖히고 노트북 전원을 켰다. 창문 밖에 안개가 자욱하다. 아, 이런 날씨라 내 몸이 이토록 무거운가 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눈이 일찍 떠진다. 평소에 나는 소리와 빛에 예민한 편이어서, 늘 자기 전에 안막 커튼으로 창문을 꼭꼭 잠그고, 그것도 모자라 안대와 귀마개를 착용하고 잔다. 이런 민감한 성향과 병원은 상극이다. 간호사는 새벽에도 두어 시간에 한 번씩 환자의 맥박과 호흡, 혈압, 체온, 링겔 속도 등을 살피기 위해 들락거린다. 간호사의 시야를 확보하고 환자의 안전을 돌보기 위해 전등 하나쯤은 켜놓고 자야 한다. 간호사가 언제 커튼을 열어젖히고 부를지 모르니 귀마개도 착용할 수 없다. 덕분에 가뜩이나 예민한 나 같은 인간은 밤새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상태를 유지한다.


밤은 정말 어두운 것이어서, 환자의 컨디션을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구어버린다. 낮에는 곧잘 버티던 당신이지만 해가 떨어지자마자 당신의 컨디션도 함께 떨어졌다. 밤이 무서웠다. 저녁 10시가 넘으면 당신을 앞에 두고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12시 넘어서 데려가주세요. 지금 가면 삼일장이 너무 짧아요.”


상황이 긴박해진다 싶으면 간호사는 자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보호자 님, 지금 소변이 갑자기 너무 줄어들었으니 알아두세요”, “환자 분이 밤새 한숨도 안 잔 것 같아요. 자는 모습 보셨나요?”, “두 시간 전에 해열제 놓았는데 열이 안 내려가네요. 우선 물수건으로 몸 좀 닦아주세요” 같은 자잘한 정보공유와 협력요청부터 “오늘 밤이 고비 같아요. 열이(무호흡이, 맥박이) 안 떨어지네요. 저도 잘 살펴볼 테니 보호자 님도 종종 지켜보세요” 같은 무서운 지시까지 내 이불을 걷어내고 불쑥불쑥 침범했다.


어찌저찌 하루를 견디고 나면 고맙게도 맑은 해가 얼굴을 보여주고, 당신의 컨디션도 조금 올라왔다. 그러면 나는 얼른 호스피스 안에 마련된 기도실로 들어가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매일 하루씩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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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안개가 잔뜩 낀 날이면 아침이 와도 당신의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흐린 안개가 누군가에게는 ‘오늘은 일어나기 좀 힘드네’ 정도의 기분을 가져온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그 전에는 몰랐다. 당신이 떠나기 몇 주 전인 11월 초에는 흐린 날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때마다 창밖을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했다.


오늘은 그날처럼 종일 안개다. 내 마음도 안개처럼 한껏 가라앉았다. 점심으로 대충 밥에 반찬을 얹어 한 그릇 안에 넣고 비벼 먹다가 ‘이거 꼭 개밥 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솟구쳤다. 지금의 내가 마치 당신을 한없이 다운시키던 그 안개 같다. 나 지금 뭐하는 거니. 당신이 그토록 아끼던 나를 아끼고 돌보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니. 당신이라는 태양을 잃은 것도 모자라 나라는 안개를 만난 오늘의 나는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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