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엄마는 적일까 동지일까

21.01.26.

by 아나스타시아

사람들은 흑과 백, 네 편과 내 편,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등으로 나누기를 좋아한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수많은 선택지에서 ‘얼른 입장을 표명해라’며내 판단과 결정을 기다리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자신에게 주어진 몇 가지 간단한 정보를 추려 재빠르게 입장을 결정하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일 잘한다’, ‘피드백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문제는 가치판단이 필요한 대부분의 일이 그렇게 이분법으로 정확하게 나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내가 남긴 글을 읽은 많은 이들이 시엄마를 비난하고 내 편을 들어준다. 1차적으로는 글 읽는 사람들이 화자의 입장에 먼저 공감하게 마련이고, 또 내가 내 감정에 취해 읽는 이로 하여금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내 앞이니까 편드느라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헌데 그 고마운 마음과 달리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불편해지고, 내 글에 마음 다칠 시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진다.

한번은 폭주 기관차 같이 앞만 보고 달리던 시엄마에 질린 내가 당신 누나에게 “시엄마 좀 말려봐라”며 하소연한 적이 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은아, 엄마가 갑상선 수술 왜 했는지 아나? 환희 살리려고 한 거야.”

교사 출신인 시엄마는 매달 공무원 연금을 받음에도 수중에 돈이 별로 없다. 시부모가 삶의 정체성을 ‘돈에 연연하지 말자’고 정해놓고 살면서 들어오는 돈의 대부분을 타인에게 기부하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베트남에 학교를 짓는 데 보태고, 교도소에 자원봉사를 가며, 성당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본인 아들을 구하기 위해 본인 주머니를 돌아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남을 돌보다가 정작 본인 아들은 돌보지 못하게 된 상황. 돈 나올 구멍을 수소문하던 시엄마는 10년 전 진단받은 ‘갑상선 암’이 생각났다. 10년 전에는 ‘수술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던 그 암덩어리 제거 수술을, 아들을 위해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수술을 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시엄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보험금을 타러 간다며 집 밖을 나서던 그분을 기억한다. 작은 손가방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당신 누나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읍내를 향하던 시엄마의 뒷모습. 그분의 작은 어깨가 그렇게 안쓰러웠다.


또 시엄마는 자신의 약한 몸을 원망했다. 당신의 죽음을 인정한 뒤에 그분은 당신에게 "약하게 낳아주어 미안해"라고 말하며 한없이 울었다. 엄마는 자식이 조금만 아파도 스스로를 검열한다. ‘입덧 때문에 밥을 많이 못 먹어서 애가 약한 게 아닐까?’, ‘젖이 돌지 않아 모유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이가 아픈 게 아닐까?’, ‘내가 일하는 엄마라 사랑을 많이 못 주어서 아이가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자식의 불행 앞에 스스로를 탓하는 엄마들 정말 많이 봤다. 시엄마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그분을 연민했다.


게다가 시엄마는 병간호 시절에 가족 가운데 당신을 가장 적게 만났다. 평소에도 몸이 약했던 데다가 갑상선 암 수술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병간호는 무리였다. 심지어 며느리는 자신을 볼 때마다 잡아먹으려 안달이고, 아들이 보고 싶었겠지만 몸도 마음도 불편해 서울에 올라올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그분 가슴에 평생 한으로 남을 것이다. 아들도 제대로 못 만나게 하고 자신이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마저 거부하는 며느리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그럼에도 그분은 한 번도 내게 원망의 말을 한 적이 없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 전, 시엄마는 “5분만 이야기하자”며 나를 작은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분은 내 손을 억지로 꼭 붙잡은 뒤에 용서를 빌었다. 이제 절대 우리에게 간섭 안 하겠다고, 본인이 너무 사랑하는 나에게 못된 시엄마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지금까지의 일은 전부 잊고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흐느껴 우는 그분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그날 후에도 그분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후회의 눈물과 미안하다는 말이 진심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우리의 과거 메시지를 읽다가 시엄마가 처음 보낸 메시지 캡쳐를 발견했다.

“첫번째 만남은 마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두 번째 만남은 차분히 하느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내 평생 함께할 좋은 인연 보내주심에 너무도 감사했다. 시아버지는 네가 볼수록 좋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구나. 이런 행복한 시간이 꿈같구나.”


이런 사랑을 주는 이가 어떻게 나에게 마냥 나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비록 우리는 극한 상황 앞에 서로 치고받았지만 그분은 내게 때로는 흑이면서 백이고, 네 편이면서 내 편이며, 옳으면서 그르고, 일정 부분 좋은 사람이면서 또 어떤 부분은 ‘나에게 한해서’ 나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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