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7.
병원에서 '뇌종양이 재발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날 오전의 일이다. 2차 항암을 막 끝낸 시기였는데, 그때쯤 당신은 왼쪽 반신을 못 쓰기 시작했고, 헛것을 들었으며, 정신적으로 점점 아이가 되어갔다. 지금 가진 정보 정도면 재발 반응임을 한눈에 알아볼 텐데, 그때는 미숙하기도 했고 항암 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항암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라고만 생각했다. 항암 약이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사만 알고 우리는 모르던 때였다.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다. 그렇게 아파하면 병원에 한 번쯤 달려갔을 법도 한데, 당시 내가 회사 일에, 암에 걸린 고양이와 남편 케어에,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느라 심신이 지친 상태라 올바른 판단이 안 되었다. 머릿속은 ‘저 상태로 다가오는 3차 항암을 어떻게 견디지’, ‘힘들다고 도중에 항암 포기한다고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머리가 아파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요양병원에 가서 케어받고 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요양병원에는 의사도 있고 여러 항암 보조 치료약도 있다고 하니까 아마추어인 나보다는 잘 케어하겠지’ 생각하며 등 떠밀듯 당신을 강서구 어느 뇌질환 전문 요양병원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병원에 가기로 한 날, 출발하기 전에 목욕이라도 시키자고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목욕하는 것보다 집이 편할 테니까, 말끔하게 씻겨서 보내야지 싶었다. 내 결심과 무관하게 당신은 욕실 안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병원 떠나는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아내와 물장난하는 게 너무 신나서 자꾸만 노래를 부르고 내게 물을 뿌리고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자꾸 욕조에서 일어났다.
왼팔로는 당신을 넘어지지 않게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몸과 머리 구석구석을 씻기다가 한껏 지쳐버렸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면도도 그날 처음 해봐서, 역방향으로 깎아야 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애를 쓰다가 정말이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병원 예약 시간은 다가오는데 이 친구는 왜 이렇게 나를 도와주질 않는 건지 원망도 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샤워는 끝내야 하니까 어찌 저찌 거품을 털어내고 나오려는데 아무래도 어설프게 깎은 그 수염이 마음에 걸리는 거다. 건드리지 말 걸, 어디는 짧고 어디는 긴 그 수염이 계속 신경 쓰여서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오려다 말고 그에게 잠깐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면도기를 다시 집기 위해 그의 팔을 잠깐 놓았다. 그사이 그는 중심을 잃으며 화장실 욕조에서 미끄러졌고, 욕조 모서리에 갈비뼈를 세게 부딪쳤다.
“아악!”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우는 그를 보고 너무 놀라서 “아, 어떡해.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며 함께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당신은 너무 아파서 옆구리를 제대로 펴고 앉지도 못하고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나 안 아파, 괜찮아”를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화장실에서 서로를 쓰다듬으며 한참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정말 당신답다. 본인의 아픈 몸보다 내 아픈 마음이 더 속상한 사람.'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신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의사는 흉곽에 청진기를 대보더니 “폐에 물이 찬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전날부터 금식하던 상태였기에 의아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아무것도 안 먹였다는 내 항변에 의사는 ‘일전에 먹었던 걸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폐에 물이 들어가면 하루이틀 만에 고통스럽게 갈 수 있다고 들어서 순간 패닉이 왔다. 한 숟가락만 더 먹어보라고 억지로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었던 그 두유가 기도로 들어간 건가?
‘어쩌지. 이제 환희 씨 가나봐’ 혼자 중얼거리던 그 순간에 아침 기도를 해주러 수녀님이 병실로 들어오셨다. 순간 두렵고 무서워서 “어떡해요, 수녀님, 환희 씨 폐에 물이 찼대요. 제가 먹인 게 기도로 들어갔나 봐요. 제가 그랬나 봐요” 호들갑 떨며 엉엉 울었다. 수녀님은 폐에 물은 아무것도 안 먹어도 찰 수 있다며, 내가 그런 마음 가지는 걸 환희 씨가 알면 얼마나 슬퍼하겠냐고 위로했다. 그 말을 들으니 욕조에서 그를 넘어뜨렸던 그날이 떠올랐다.
‘맞아요, 수녀님. 환희 씨는 제가 먹인 게 폐에 들어갔다 해도 저를 원망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걸 알아서 제가 더 원망스러운 거예요.’
다행히 그날 저녁, 엑스레이상 폐에 이상이 없음이 확인되었고, 순간 온몸에 긴장이 풀려 주저앉은 나는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