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9.
시엄마 이야기를 들은 주변 이들이 종종 물어온다.
“그래도 다행히 시아빠는 좀 대화가 통하는 분이었나 봐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머뭇거린다. 통했나, 통하지 않았나. 어느 쪽이 옳은 대답인지 헷갈려서다. 가치관 부분에서 시아빠와 시엄마는 큰 차이가 없다. 나는 몸이 가진 자연치유 능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병원의 기술과 능력을 폄하할 생각도 없다. 시부모는 ‘음식으로도 못 고치는 병은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믿고, ‘의사는 돈 벌어먹으려 이 약 저 약 처방하는 놈들’이라는 인식이 굳건하다.
두 분은 모두 자연치유의 힘을 굳게 믿었다. 시엄마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누군가에게서 사사받은 수많은 자연치유 지식을 시아빠에게 전화로 공유하면, 시아빠는 그 지시에 따라 열심히 움직였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갔을 때 의사가 “환자 마지막 변을 언제 보았냐”고 물어 “시부모가 하루에 관장을 세 번씩 시켰다”고 대답했다. 순간 그 말을 듣는 의사의 눈동자에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 뇌종양은 뇌에 압력을 가하면 안 되는데, 힘을 잔뜩 써야 하는 관장을 그렇게 시켰으니 환자가 많이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무식해 보였을까. “환희 씨는 뇌종양이라 관장하면 안 된대요”라고 의사의 말을 시아빠에게 몇 번 옮겼는데, 그분은 절대 “우리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내 말에 매번 “그래도 커피 관장이 통증을 줄여준다고 했다”라고 대답했다.
시아빠가 내게 준 상처도 있다. 당신이 아직 세상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 장롱 안에서 당신이 평소 아끼던 선물받은 티셔츠, 우리의 커플 잠바와 커플 조끼, 커플 티 같은 것들을 전부 시골로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왜.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대체 왜”라고 중얼거리다가 당신 옷과 신발, 가방 같은 것들을 전부 트렁크에 실어 삼오제 날 ‘다 가져가시라’며 쓰레기 버리듯 던져주고 돌아오기도 했다. 이후 집에 당신을 떠올릴 만한 물건이 너무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크게 후회했지만.
그럼에도 시아빠와의 관계 안에서 크게 앓은 적은 거의 없었다. 시엄마와 시아빠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시아빠는 우리를 하나의 독립된 가정으로 인정했다. 내가 의견을 물을 때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이라 대답했고, “네 가정이니 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시엄마로부터 전달받은 지식에 따라 마음대로 당신에게 실험해보는 게 아니라, 내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물었고, 내가 “싫다”고 대답하면 더는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당신 생각으로 가득한 시엄마를 앞에 두고 “남의 남편 그만 들여다보고 당신 남편이나 좀 챙겨!”라고 말하는 냉정함도 있었다. 스스로의 위치를 ‘주인’이 아닌 ‘보조’로 설정한 덕분이었다. 당신과 나를 위해 그분은 기꺼이 한 발 물러나주었다. 그분이 그렇게 나오니 나 역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필요할 때마다 의견을 물을 수 있었다.
또 시아빠는 듣는 이를 배려할 줄 알았다. 시엄마는 모든 대화를 “이렇게 저렇게 해라”고 명을 내리는 타입이고, 시아빠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게 우리에게 좋지 않을까?”라고 청자에게 되묻는다. 지금이야 '초등학교 교사 출신(시엄마)과 중고등학교 교사 출신(시아빠)의 화법 차이인가 보다' 하고 이해하는데, 당시에는 시엄마의 화법을 잘 모르기도 했고 또 내 감정도 요동을 치던 때라서 그분의 한마디 한마디는 가시가 되어 내게 박혔다. 그때마다 오해는 쌓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잔뜩 꼬여버렸다. 반면에 시아빠의 말은 언제나 '제안'이었고, 시엄마의 말을 곱씹어서 다시 내게 넘겨주어 상처를 봉합시키려 애쓰기도 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시엄마는 당신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있는 내게 다가와 “그 사진 버려라”고 말했다. 또 삼오제 날 내게 “얼른 재혼해서 아기 낳아라.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다해라”고 했다. 이 발언들만 보면 ‘며느리에게 참 잔인한 시엄마’ 느낌이다. 당신 며느리가 세상 꼴 보기 싫고 얼른 자기 아들 곁에서 치워버려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사실 저 발언들은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서 하는 말이다. 가톨릭 이념과 한국 전통사회 인습이 고스란히 박혀 있는 그분에게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내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해서 하는 표현이다. 말주변이 없고 직업적 특성까지 결합하면서 가시 같은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쏘아대는 이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같은 말도 시아빠는 “이제 내가 네 아빠 해주마. 환희가 이렇게 똑똑한 딸을 선물해주었구나”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시엄마와는 점점 멀어지고 시아빠와는 자꾸 가까워졌다.
마지막으로 함께 당신의 마지막 한 달을 지켰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당신을 보내주고 난 뒤에 '그간 고생했다'고 나를 보듬는 시아빠를 바라보다가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며 ‘이런 게 전우애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생과 사를 함께 오간 사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뜨거운 무언가가 우리 사이를 감싸고 있었다. 언젠가 당신에게 '나도 다정한 아빠를 갖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당신 덕분에 이토록 다정한 시아빠를 선물받은 게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