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애도가 타인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21.01.30.

by 아나스타시아

요즘 들어 나를 걱정하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 그간 연락이 뜸했던 사이부터 당신의 지인들, 심지어 SNS에서 만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까지 내게 안부를 묻는다. 그 가운데 친구 토란이 있다.


당신과 하루가 멀다 하고 어울려 놀러 다니기 전에는 토란이 내 데이트 메이트였다. 우리는 한창 ‘건강한 삶’에 몰두할 때 하루 식단과 운동량을 점검해주는 운동 메이트이기도 했다. 매일 무엇을 먹고 얼마나 걷는지, 무엇에 몰두하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 가족과도 이야기하지 않는 수많은 정보를 공유했다. 한번 통화하면 한두 시간씩 수다를 떨다가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이야기하자”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언젠가 친한 언니들과 함께 타이완에 놀러가서 월하노인 사원 안에 향을 피우고 “당신께서 붉은 실 엮어놓았다는 그 짝 얼굴이나 좀 보게 해주세요”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서로의 썸이나 연애에 이런저런 품평을 나누기도 했다. “이환희 씨가 점점 남자로 보이는 것 같아 큰일이네(?)”라고 중얼거리는 나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자로 보이면 안 돼요? 언니 주변 남자 가운데 젤 정상인 것 같은데?”라고 말해 우리의 연애를 부추긴 것도 그 친구였다.


“월하노인에게 기도까지 했는데 효험이 없다”고 투덜댄 나날이 무색하게 나는 당신과 연애한 것도 모자라 1년 만에 결혼했고, 그 친구 역시 그다음 해에 곰돌이 같은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다. 이후 삶의 가장 친한 친구가 생겨버린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던 것 같다.


얼마 전 토란을 만났다. 서울로 이사하고도 제대로 초대 한 번 못 했다가 이렇게 만나니 민망했지만, 우리는 떨어져 있던 시간이 무색하게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그 시절로 금세 돌아갔다. 한참 울고 웃다가 그 시절 가장 든든한 조언자였던 토란에게 지금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SNS에 글을 계속 올려도 괜찮은 걸까? 내가 쓰는 글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당신을 떠나보낸 직후에는 내 슬픔을 못 이겨 아무 글이나 마구 써댔다. 인스타에 떠돌아다니는 이별 상담 글들에 코웃음 치던 때였다. ‘연애하다 이별하는 게 뭐 그리 비극적이야. 전화 걸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잖아. SNS 훔쳐보면 뭐하고 사는지 알 수 있잖아. 적어도 같은 하늘 아래 있잖아. 니들이 뭐가 슬퍼.’ 밤이 내려앉으면 마치 ‘정말 슬픈 게 뭔지 보여주겠다’는 기세로 마구 키보드를 쳐댔다. 그 글에서 나는 신을 욕하고, 시엄마를 미워하고, 스스로를 상처입혔다. 그래야 내 슬픔이 온당한 것이 될 테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날것의 감정이 부끄러워졌다. 내 글이 일기와 뭐가 다른가 싶었다.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다. 내 슬픔은 나만 알면 되는 일 아닌가. 남들에게 이렇게 노출할 필요가 있을까.


얼굴 모르는 사이지만 한동안 서로에게 하트를 누르며 친밀하게 지내던 이가 내 팔로잉을 끊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아마도 내 글을 보기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이에 잔뜩 움츠러들어 자기검열했다. 토란에게 저 말을 건넬 때는 SNS에 글 올리기를 잠시 멈추었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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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은 당신과 나의 연애를 부추길 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니, 언니 글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팔로잉을 끊어야지, 언니가 글쓰기를 왜 멈춰야 하는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 글을 읽고 더 많은 이가 좀더 잘살고 싶어질 거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계속 써야 할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토란 말에 홀려 연애를 결심했던 과거처럼, 또 다시 홀려 계속 쓰기를 결심했다.


요즘 들어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본인이 암환자 또는 암환자 가족이라는 고백과, 내 글을 읽고 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는 독백, 잠이 오지 않을 때 연락하라는 배려, 밥 잘 챙겨먹으라는 응원 같은 것들. 적어도 이들은 내 글에서 필요를 찾은 것이겟다. 이들의 위로만 받아 안으며 이 애도의 시간을 견뎌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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