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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Jan 31. 2021

언젠가 생길 일이 지금 생긴 것뿐

21.01.31.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는 루틴 가운데 하나는 내 휴대전화와 당신의 휴대전화로 번갈아가며 페이스북 앱에 접속해 ‘과거의 오늘’을 훑어보는 것이다. 하루의 단편을 짧은 글로 그때그때 남기는 페이스북 특성상, 우리는 같은 날 같은 하루를 보냈어도 매번 다른 시간을 묘사한다. 똑같은 사진을 올려도 묘사하는 감정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런 우리 둘의 과거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있었다’는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엊그제부터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을 들여다보는 게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 때 우리 집 둘째 고양이 리아의 병 증상이 시작되었고, 내 페이스북은 온통 리아를 향한 미안함과, 어떻게 해야 녀석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즈음 나는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쯤 일찍 퇴근해 리아를 홍지동에 있는 동물병원에 데려가 진료받거나 혼자 약을 타러 방문하기를 반복했고, 불 꺼진 집에 돌아와 혼자 밥을 챙겨먹은 뒤에, 리아를 붙잡고 한참 울다가, 도망 다니기 바쁜 녀석 뒤를 쫓으며 약 먹이기 위해 끙끙거리다가, 블로그에 리아의 질병 관련 내용을 글로 적었다. 그러다 보면 밤 11시쯤 저녁도 건너뛴 당신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런 당신을 앞에 두고 병원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조언,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 등을 줄줄 읊으며 리아 상태를 브리핑하기에 바빴다.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나를 바라보던 당신의 핼쑥한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같은 날 당신의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은 새로 출간한 책을 홍보하고 사전 서평단의 폭발적인 반응에 조금은 들뜬 마음을 감출 줄 모르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때쯤 리아 몸에 암덩어리가 자라던 것처럼 당신 머릿속 그것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집안보다 집 밖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당신에게 내심 서운해하고 리아에 대한 모든 고민과 선택과 행동까지 나 혼자 감당하는 상황에 억울한 마음을 키워갔다.      



왜 우리는, 나는 당신을 살리지 못했을까. 리아와 당신이 동시에 아프지만 않았어도, 머리 아프다던 당신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어도, 당신이 자연치유에 대한 믿음이 조금만 덜 공고했어도 우리가 좀더 병원에 빨리 가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런 내 질문을 딱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냥 언젠가 일어날 일이 지금 일어났다고 생각해.”     


역시 무언가를 먼저 잃어본 사람은 잃은 사람을 위로할 줄 안다. 내가 리아를 바로 병원에 데려가 나름의 조치를 취하고 매일같이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고민하고, 수많은 정보를 모아 블로그에 정리해두었음에도 결국 살리지 못했던 것처럼, 당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생명은 일개 사람 하나가 구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당신의 글을 계속 훑어보면서 ‘당신은 육신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신은 20대 어느 시절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한때 뇌종양 의심 판정과 강직성 척추염, 각종 장 질환, 위염 등으로 고생 깨나 했고, 나와 함께하던 때에도 어깨 통증과 두통, 위염 같은 질병은 반복되었다. 이제 이런 고통을 멈출 수 있어서 지금은 편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나를 만나기 위해 가장 아프던 시기를 겪고도 10년이나 더 살아주었던 게 아닐까. 모질고 아픈 시간이었을 텐데 긴 시간을 견뎌주고 나에게 당신과 함께하는 나날을 선물해주고 떠나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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