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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Feb 01. 2021

이번 명절에 어디로 가지

21.02.01.

다음 주면 벌써 설이다. 이번 설은 당신이 떠나고 일가친척이 처음으로 모이는 명절로, 친척 서열 가운데 가장 막내인 당신의 부재가 확연히 드러나는 날일 것이다. 친척 어른들은 당신 이름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테고, 시엄마는 종일 누군가에게 기대어 큰소리로 곡을 하겠지. 그 모습 앞에 많은 친척들이 말을 아끼며 조용히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 고요가 눈에 선하다. 당신 대신해 명절에 혼자 시가에 찾아갈 자신도 없고, 시엄마에게 전화해 그의 감정을 위로할 기운도 없어서 그저 과일 한 상자를 주문해 당신 집에 택배 보냈다.     

 

우리는 늘 명절을 따로 보냈다. 나는 내 부모가 살던 군포로, 당신은 당신 부모가 거주하는 상주로 돌아가 며칠을 지낸 다음에 명절 끄트머리에야 조우했다. 내가 제사 지내는 당신네 큰집으로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남동생을 밀쳐내고 아빠 제사상 상주를 하겠다고 자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잠시 동안의 헤어짐이었다. 처음에는 우쭐했다. 어찌되었든 전통적인 결혼이라는 제도에 우리가 실금 하나를 새겨놓은 것이니까. 이제 막 스무 살 된 친척 동생 하나는 이런 나를 바라보면서 “언니 진짜 멋있어.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언니처럼 하고 싶어”라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명절을 겪을 때마다 의아해졌다. 명절은 가족이 만나 함께하는 날이고, 우리는 가족인데 왜 명절마다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거지? 작년 이맘 때 내 이런 마음을 당신에게 고백했다.      


“우리가 가장 가까운 가족이잖아. 명절은 가족끼리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당신에게 평소에는 당신 마감 일정 피하랴 내 마감 일정 피하랴 어디 제대로 놀러가지도 못하지 않냐고, 친척과 제사 따위 걷어버리고 국내든 해외든 같이 여행이나 가자고 제안했다. 당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집은 내 주도하에 설에 차례 지내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으나 당신의 확답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당신 엄마의 불호령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주춤거리지 않았을까.     

이제는 정말 명절에 당신 집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원래도 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가는 게 오히려 당신의 부재를 분명하게 확인시켜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전처럼 원가족과 명절을 함께 보내야 하는가. 고백하자면, 우리 집도 가고 싶지 않다. 일전에는 내 신념을 지킨다는 이유로, 남동생보다 내가 먼저 절하고 술을 따르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엄마 집으로 향했으나, 이제는 그런 것 따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누가 술을 따르든 말든, 제사 지내든 말든 맘대로 하라지. 아빠에게 미안하지만, 이제 내 관심 밖이다.    

  

무엇보다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은 친척들과 마주하는 찰나다. 친척들이 안쓰러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 손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그 수많은 말들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나는 분명 그들의 눈빛 앞에 태연하기가 힘들어 또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으며 그 순간을 모면하려 발버둥 칠 것이다.      


내 가족인 당신과 함께할 수 없는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앞으로 내게 명절은 그저 빨간 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저 조용히 집에 머물며 당신이 남긴 흔적들이나 주어삼키는 게 나에게 가장 알찬 명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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