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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Feb 02. 2021

형님이 글을 쓴다

21.02.02.



당신은 자기 누나를 각별히 아꼈다. 겨우 두 살 차이였지만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어린 당신의 똥기저귀를 갈아주었던 누나가 실질적인 양육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그때처럼 당신 누나의 헌신은 계속되었다. 집에서 요양하던 시절, 그는 금요일 밤이면 대전에서 KTX에 몸을 실었고, 서울 우리 집에서 금토일 머물다가 일요일 밤이면 다시 대전으로 돌아갔다. 평일 내내 부엌일을 도맡은 우리 엄마에게 쉬는 시간을 준다는 이유였다. 3일 동안 시엄마가 짜놓은 식단에 따라 충실히 밥을 해다가 당신에게 바쳤다. “부엌일 그만하시고 환희 씨와 대화나 좀 하시라”고 제안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며 계속 집안을 쓸고 닦았다. 


평소에도 당신 누나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먼저 나서주었다. 첫 명절 이후 시엄마와 당신 사이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내 능력으로는 꼬일 대로 꼬인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과연 풀 수는 있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하던 당신이 제일 처음 조언을 구한 대상이 당신 누나였다. 빈 방에 혼자 들어가 내가 듣지 못하게 목소리 볼륨을 최대한 낮춘 뒤에 수십 분 동안 통화했다. 당신 누나는 우리를 대신해 시엄마를 설득했고, 서로의 서운함을 털어놓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결국 시엄마는 우리의 단호함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나에 대한 배려도 각별했다. 시부모가 카카오톡 단체창을 만들었을 때 며느리 입장에서 단체창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언급하며 ‘없애자’ 주장했던 것도 당신 누나였다. 또 그는 한 번도 나를 ‘시누’라고 부른 적이 없다. 언제나 내게 “지은아”라고 말을 걸어주었다. 선물 하나 보내려 해도, 상품권 하나만 건네도 “아냐, 나는 정말 신경 쓰지 마, 지은아. 정말 괜찮아”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병원비를 보탠다는 명목으로 없는 돈을 끌어다가 기어이 내 손에 쥐어주고야 말았다. 심지어 내가 받지 않을까봐 스테인리스 쓰레기통 안에 돈 봉투를 넣어주고 이사 선물이라며 두고 갔다. 어쩜 이렇게 배려심이 많을까. 그는 정말 형兄다웠다. 시엄마가 보내는 수십 수백만 원 어치 음식이 담긴 택배 박스보다 그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이 더 고마웠다. 시엄마에게 받은 상처들은 당신 누나 덕분에 회복되었다.



당신은 이토록 다정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누나가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느라 더 큰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조카를 예뻐하고 누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과 별도로 누나의 삶이 좀더 확장되기를 바랐다. 한번은 당신이 누나에게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링크를 공유하며 “누나도 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삶의 확장을 응원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당신 누나는 “내가 글을 어떻게 써”라는 이유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언젠가 시아빠는 “어릴 적 슬이(당신 누나)는 산문을 잘 썼고, 환희는 시를 잘 지었어”라고 말했다. 당신은 “불공평하게도 아빠의 (예술적) 재주는 누나가 다 가져갔어”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 한번은 내게 누나 블로그에 있는 조카들의 육아 일기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니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감의 문제였을 것이다. 당신 누나는 아이 둘을 키우느라 10여 년 넘게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다. 또 공부를 핑계로 누군가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대전에서 서울을 왕복할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당신 누나가 이제는 글을 쓴다. 페이스북 창에다 당신과 함께한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하고, 딸 입장에서 본인 엄마의 상태를 묘사하고, 당신의 옷을 입고 돌아다닌 일상을 적어놓는다. 당신 계정으로 몰래 들어가 훔쳐 읽은 그 글들은 당신 누나를 닮아 여리고 환했다. 당신의 부재가 그에게 글쓰기라는 능력을 돌려주었다. 글을 통해 누나의 삶이 확장되기를 바라던 당신의 그 마음이 이렇게 받아들여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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