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5.
2015년, 친구 꼬드김에 이끌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시민 도시계획가 양성과정 강연을 들었다. 강연은 몇 달 동안 진행되었다. “오늘 저녁에 뭐해요?”라는 당신의 질문에 몇 번쯤 “도시계획가 강연을 들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때쯤 당신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다. 서울 연남동에 살면서 ‘성당 혼자 가기 싫다’는 핑계로 일요일마다 내가 다니는 일산 백석동성당까지 와서 오전 10시 30분 미사를 봤다. 그때는 당신에게 친구 이상의 관심은 없던 시절이라 ‘어지간히 성당 혼자 가기 싫은갑네’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날도 심드렁하게 당신에게 “강연 같이 들을래요?” 물었다. 당신은 기꺼이 응했고, 파주 출판단지에서 광화문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강연이 끝난 후 근처 던킨도너츠 카페에 앉아 짧은 수다를 나누었다. 그때 조명이 좋았는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 눈에 콩깍지가 뒤덮였는지 모르겠다. 문득 눈에 들어온 당신 옆모습이 너무 해사하고 웃음도 예뻐 보였다.
‘헉. 뭐야. 왜 갑자기 이 친구가 잘생겨 보이지?’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 아닌데, 잘생겨 보인다면 이건 문제(?)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봤다. 자꾸 눈앞에 알짱거려서 익숙해진 바람에 생긴 착각인지 아니면 저 사람이 시나브로 마음에 들어온 것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다시 한 번 얼굴을 마주 보고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토요일 저녁에 뭐해요?”
평창동 모 쌈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윤종신 배우자가 운영한다는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셨다. 당신이 ‘성을 보여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평창동 높은 담들을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성이냐”고 물으니 당신이 씩 미소 지었다. 하아. 여전히 잘생겨 보였다. 이제 그에게 호감이 생겼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날 이후에도 그 지겨운 강연은 계속되었다. 마지막 수업은 10월 15일이었고, 당시 박원순 시장이 직접 단상에 올라 청강생들에게 수료증을 전달했다. 함께 강연 듣자고 제안한 친구는 진작 사라졌는데, 쓸데없이 성실한 나는 출석률 80퍼센트를 달성해 그 수료증을 받아냈다. 당신은 마지막 수업을 축하해준다는 핑계로 광화문까지 와주었다.
수료증을 트로피처럼 들고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당신과 나 둘 중에 누군가 카페에서 차 한잔하자고 제안해 근처 카페 테라스 석에 자리를 잡았다. 당신이 가방 안에 숨겨두었던 연보라색 소국을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 좋아해요?”
0.1초 만에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 쭈뼛거리던 당신의 캐릭터와 안 맞는 이 상황에 크게 당황해서 얼이 빠졌다. 당신은 말을 이었다. “우리 만나볼래요? 귀하게 대해줄게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귀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뭐라 대답해야 하지. 나는 저렇게 멋진 말이 생각 안 나는데' 하고 고민하다가 그저 남은 차만 홀짝거렸다. 당황해 만들어낸 내 침묵에 당신 또한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카페에 값을 치르고 함께 문을 나서는데, '이대로 헤어지면 당신 성향상 다시는 고백 비슷한 말조차 내밀지 않겠지' 싶었다. 대답 대신 슬며시 당신 손을 잡았다. 당신은 흠칫 놀라더니 가만히 손을 맡겼다. 이후 파르르 떨리는 손의 떨림이 느껴졌다. 어지간히 눈치 없는 나는 당신에게 “엥? 추워요?”라고 물었다.
그날 당신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훌륭한 시간이었다. 자랑하고 싶을 만큼. 손과 손이 포개진 순간, 몸짓과 소리와 촉감이 몸을 섞어 공기 중으로 달게 녹아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설탕기 어린 공기가 살갑게 기도를 스쳤다. 그러다 조금은 쑥스러운 시선이 닿는 어느 한 사람 이외의 모든 세계가 소멸하기도 했다. 니체가 그랬던가. 인간은 감정이 아닌 행동만을 약속할 수 있다고. 아직 설익은 맘을 섣불리 꺼내놓기보다는 시작할 때의 마음을 더 가꿔가려 애쓰고, 표현하겠다 말하고 싶다. 영육 모두 좀 더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 문장들이 하도 반짝거려서 닳도록 들여다봤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평범한 일상도 정말 귀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