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6.
주말이면 점심을 챙겨 먹은 뒤에 등산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선다. 리아를 뿌려준 산에 다녀오기 위해서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녀석에게 나는 “네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걸, 너무 사랑스러웠다는 걸 꼭 기억해줄게”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전혀 지키지 못하고 있다. 리아가 떠난 지 일주일 만에 당신이 쓰러졌고, 나는 곧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막상 당신이 떠나고 나니 당신 생각으로 머릿속에 가득해 리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이전에는 누구에게든 한 점 의심 없이 “고양이는 저희 가족이에요”라고 말했는데, 같은 가족이어도 이별의 농도에 차이가 있더라. 그게 리아에게 참 미안해서, 리아가 있는 곳으로 향할 때만큼은 리아 생각만 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내가 아니어도 생각해주는 사람이 정말 많지만 리아는 내가 아니면 떠올려줄 이가 없으니까, 이 시간만큼은 리아에게 양보하라고 속삭인다.
그간 시엄마와 정말 많이 싸웠는데, 그 가운데 리아에 관한 말다툼도 있었다. 리아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은 시엄마는 “고양이에게 환희 병 좀 가져가라고 기도해라”고 했다. 그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우리에게 사랑만 주던,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앓고 앓다가 겨우겨우 떠난 그 녀석을 당신 아들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다니 10개월간 암을 앓다가 세상을 등진 녀석에게 또 다른 암마저 가져가라니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시엄마에게 울면서 대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어요. 걔는 우리 가족이라고요!”
화를 내고 정색했지만 돌아서니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리아에게 너무너무 미안한데, 정말 그런 부탁하면 안 되는 건데, 동시에 리아가 정말 당신의 암을 가져가주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거다. 리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당신과 함께 리아를 위해 기도할 때 “리아야, 형아 얼른 다 낫게 네가 조금만 도와주라, 형아 병 좀 가져가주라”고 빌었다. 당신은 그 말을 듣자마자 “리아야, 더는 여기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아팠던 거 힘들었던 거 다 잊고 너 편하게 지내”라고 기도를 정정해버렸다. 당신의 그 모습을 보니 리아에게 그런 부탁을 해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당신 덕분에 리아는 지금쯤 편안할 것이다.
리아를 뿌려준 그곳은 볕이 아주 잘 든다. 누가 그러는데, 겨울에도 해가 계속 드는 명당이라고 한다. 전망도 좋고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도 마련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그곳에 잠깐씩 머물며 해바라기하다가 내려간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던 리아가 참 좋아할 것 같다. 오늘도 그곳에서 가만히 리아를 불러보았다. “안녕, 리아야. 누나 왔어. 잘 놀고 있었어? 형아와 있는 그곳은 평안하니?” 혼잣말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마스크에 입을 숨기고 조그맣게 몇 마디 건네어본다. 내 목소리를 들은 리아가 저쪽에서 깡충깡충 뛰어올 것만 같다.
슬픔 안에 빠져 살 때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도 양심이 있으면 한 해에 한 생명씩만 데려가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떻게 이렇게 둘을 한꺼번에 데려가시냐고. 나는 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화를 내고 미워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지금은 둘이 함께 떠났다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그 낯선 길이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나에게는 큰 상실이었으나,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그 길을 건넜을 둘에게는 다행인 셈이다. 지금쯤 당신과 리아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있겠지. 이제는 그 어떤 경계도 힘듦도 없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