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7.
당신의 흔적 대부분을 정리했으나 아직까지 정리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휴대전화 번호다. 카카오톡에 당신 이름이 사라지고 괄호와 함께 ‘알 수 없음’이 뜨거나 낯모르는 이의 얼굴로 대체되는 순간을 아직은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서 계속 살려두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 떠난 줄 모르는 카카오톡은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마냥 ‘생일인 친구’에 당신 얼굴을 올려놨다. 죽은 이의 생일을 어떻게 챙기라는 건지. 아이러니하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세상에 태어났음을 기념하는 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지어 당신은 살아 있을 때도 생일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떠난 후 첫 생일만큼은 챙겨주는 거라기에 연차를 냈다. 조수석에 당신 대신 영정사진을 태우고 용인으로 차를 몰았다. 두어 시간쯤 달리면 당신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출발할 때는 당신 본다는 생각에 흥겨웠는데, 막상 도착하니 또 눈물이 쏟아졌다.
당신은 전날 내린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얼른 다가가 소복하게 쌓인 눈을 걷어내고 당신 몸 위에 영정사진을 배치해두었다. 간단하게 준비해온 다과를 차려놓고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다가 나만큼 오늘을 쓸쓸해할 한 사람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두어 번 울리고, 이내 울음으로 가득한 시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역국 먹었냐고 전화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어”라는 그분 말에 “제가 대신 미역국 먹을게요” 대답했더니 "야야, 그러지 마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지. 당신이 먹어야 의미 있는 것이지 내가 미역국 먹는 게 어떤 위로가 되겠나.
나중에는 울음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여 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네 목소리를 들으니 환희랑 통화하는 것 같구나. 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네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전화를 못 걸었다”는 말만 알아들었다. 그러지 마시라고, 아무 때나 전화해 환희 씨 이야기 들려달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 통화 덕분에 눈물범벅이 되었다. 엄마가 오기 전에 얼른 눈물을 닦아 말렸다.
엄마는 제사의 달인답게 이것저것 많이도 준비해왔다. 당신 앞에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차렸다. 윗사람인 엄마와 아내인 나는 당신에게 절할 수 없어서, 손아랫사람인 동생만 두 번 절을 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당신에게 막걸리를 따라주고 인사만 건네었다. 막걸리를 보며 “이환희 씨는 아스파탐 들어간 막걸리는 안 마시는데” 중얼거렸다가,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졌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생일상은 다 틀렸다. 당신은 막걸리도 더운 여름날에 한 잔만 마시고, 저 제사상에 올라간 북어도 대추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니까 오늘의 제사상은 떠난 당신이 아닌 남겨진 우리를 위한 것이다. 알면서도 자꾸만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당신을 대하고 싶어진다.
당신은 종종 “이것 봐. 내가 행운의 남자라니”라고 말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였을 때, 회사 가는 셔틀버스가 줄서자마자 도착했을 때, 길을 걷는데 신호등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마다 “이것 봐. 행운의 남자 맞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자잘한 것들에는 잘 적용되던 행운이 왜 이번에는 들어맞지 못했을까. 나는 이제 그 ‘행운’이라는 단어도, 당신의 생일마다 다가오는 ‘입춘’도, 기쁨과 즐거움을 뜻하는 ‘환희’라는 단어도 이전의 설렘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