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8.
나보다 먼저 당신을 알고 함께 친밀하게 지내던 K 언니를 만났다. K 언니는 당신이 떠난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일이 바빠지며 자주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저 연락이 안 닿을 뿐이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다고 말했다. 잠깐이지만 그 말을 하는 언니가 부러웠다. 나는 매 순간 당신의 부재를 경험하니까. 당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언니가 물었다.
“언제 환희가 제일 보고 싶어?”
글쎄. 나는 언제 당신이 제일 보고 싶을까. 저 질문을 받자마자 당신이 보고 싶던 일상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들리던 “얼른 일어나서 아침 먹어” 소리를 아무리 기다려도 들리지 않을 때, 혼자 일어나 1인분만큼의 식사를 차릴 때, 다 먹고 쌓아놓은 설거지더미를 바라볼 때, 적게 만들려 노력했음에도 꼭 1.5인분의 요리가 만들어질 때, 아무리 먹고 먹어도 도무지 반찬이 줄어들지 않을 때, 빨랫감이 좀처럼 쌓이지 않아 세탁기 돌릴 날을 자꾸 미룰 때, 청소하고 빨래하는데 얼른 달려와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 때,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점심 맛있게 먹어” 문자 보낼 사람이 없을 때, 스피커에서 윤종신 노래가 흘러나올 때, 당신이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던 이승환의 음성을 들을 때 나는 당신이 그립다.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 이를 사람이 없을 때, 누가 열받게 했는데 편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 즐거운 일이나 흥미로운 일이 생겼는데 같이 놀라워해줄 사람이 없을 때, 힘들고 아픈데 응석 부릴 사람이 없을 때, 낮에 산책 나갔는데 손잡고 걸어가는 커플을 발견했을 때, 밤에 산책 나가기가 무서울 때, 한 사람만의 손길로는 부족한 웅이가 자꾸만 울면서 쫓아다닐 때 나는 당신을 떠올린다.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당신이 그은 밑줄을 발견할 때, 당신이 좋아하던 영화를 보며 ‘이환희는 이 영화를 왜 좋아했지’ 상상할 때, 함께 보던 예능을 혼자 볼 때, 같이 보던 드라마 새 시즌이 나왔을 때, 길을 걷다가 건장한 청년을 보고 ‘저 사람은 왜 건강하지’ 생각이 들 때, 또 길을 걷다가 허리 굽은 노인을 보고 ‘저 사람은 어떻게 저 나이까지 살아 있지’ 생각이 들 때, 당신을 함께 아는 사람을 만나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또 당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 앞에서 불행을 겪지 않은 척 이야기 나눌 때마다 당신의 부재를 느낀다.
자기 직전, “내가 먼저 누웠다!” 소리치고 냅다 누워버린 다음에 당신에게 불 끄라고 재촉하는 장난을 칠 수 없을 때, 집에 들어와 “먼저 씻어”, “자기 먼저 씻어”, “아니야, 자기가 먼저 씻어” 서로 미루는 실랑이를 벌일 수 없을 때, 잠들기 직전에 “잘 자”라는 말 주고받을 사람이 없을 때, 나 이렇게 우는데 놀라서 달려오는 당신이 없을 때 ‘정말 이제 혼자구나’ 느낀다.
이 가운데 어떤 순간에 당신이 가장 보고 싶을까. 모르겠다. 그냥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