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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Feb 09. 2021

매일 당신을 쓰는  시간

21.02.09.

당신이 떠난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일 당신에 관한 글을 쓴다. 너무 피곤해서 컴퓨터를 들어볼 기력조차 없을 때나 집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글을 쓸 물리적 시간이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조각 글이라도 남기고 잠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걱정스럽기도 한가 보다. 내가 남긴 글을 꾸준히 따라 읽는 이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또는 어떻게) 글을 매일 써?”


이 질문에는 아마 ‘그렇게까지’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대충 가벼운 웃음과 함께 이런 식의 대답을 건넨다.


“밤이 얼마나 긴 줄 아세요? 글을 쓰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상대방은 보통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쩔 때는 “지은이가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과 함께 가벼운 안도를 내보이기도 한다.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일까. 나는 슬픔을 다스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아들을 잃은 설움을 글로 남긴 박완서 작가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달랜다. 넘어가지 않는 밥 대신 술을 마시고 뻗어버림으로써 시간을 소비한다. 그 글을 보며 ‘이분은 술 마실 줄 알아서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술은 합법적으로 타락하는 방법 아닌가. 나는 술도 마실 줄 모르고, 성실과 노력이 삶의 전부인 줄 알고 살던 터라 타락할 줄도 모른다. 다 내려놓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배운 적이 없다. 또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이라, 방법을 알아도 짐짓 고상한 체하느라 시도도 못 해볼 것이다. 그러니 내 슬픔을 풀어내는 유일한 방법이 글 쓰는 것이었다. 


고백하자면, 글을 쓴다고 고통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글을 쓴다고 해서 당신을 잃은 고통이 사라진다면 나는 잠도 자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채 글만 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내 슬픔은 당신이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작 글 같은 것이 나를 달랠 수 없다.


오히려 글은 쓰면 쓸수록 모호했던 감정에 구체적인 언어를 선물해 내 안에 남겨놓는다. 나를 슬프게 하던 고통들을 기어이 눈앞에 가져다놓는다. 어쩔 때는 담담하게 써내려가다가 내가 내 글에 취해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게다가 내 글은 당신이 내 곁에 없다는 구체적인 증거다. 당신이 내 곁에 있었다면 쓰지 않을 것들이니까.


그럼에도 왜 쓰는가. 당신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당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없어졌는지 기어이 글로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내 안에 담긴 일종의 ‘공포심’ 때문이다. 당신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다 먼저 배우자를 잃은 지인 J를 만났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전철을 따라 밟을 필요는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 인생 선배가 되어버린 J는 많은 조언을 내밀었다. 대부분 그가 몸으로 터득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 조언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주워 삼켰다. 한번은 그런 그가 지나가듯이 이런 말을 언급했다.


“아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그 사람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힘들었는데, 3년쯤 지난 지금은 생각이 자꾸 사라져서 힘들어.”


세상에. 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이미 당신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더는 당신과 그 어떤 추억도 쌓을 수 없는데 당신이 남기고 간 추억마저 사라진다고? 그것마저 없으면 당신이 내 곁에 살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남은 생 동안 그 기억만 파먹으며 살아야 할 텐데, 더는 당신을 기억할 추억이 내 곁에 없다면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말에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로 인해 얼마나 빛이 났는지, 당신이 내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안겨주고 떠났는지,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글로 박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지금 이 글들은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닌 미래의 나를 지탱하기 위한 방파제 같은 것이다. 당신 없이 살아가야 할 나를 지키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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