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0.
간밤에 당신이 꿈에 나왔다. 당신을 떠나보낸 직후에는 종종 꿈에서 만났지만 요즘에는 통 보이지 않아 섭섭하던 차였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여주니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꿈에서 당신이 뽀뽀도 해주었다. 당신의 머리스타일이나 외형은 병나기 전과 똑같았는데, 자꾸만 가만히 있다가 풀썩 쓰러지는 게 몸 안쪽은 아플 때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꿈속에서 나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쓰려지려는 낌새가 보이면 잽싸게 다가가 몸을 받쳤고, 덕분에 머리가 바닥에 찧는 것을 막았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신이 내게 고맙다고 표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 혼자 뿌듯해했더니 잠에서 깼을 때도 조금 들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니 조금 허무했다. 얼마 만에 만났는데 어디 멋진 곳에서 진하게 데이트나 할 것이지 무슨 쓰러지는 몸 받쳐주다가 그 귀한 시간을 다 보냈나 싶어서. 아마도 병간호할 때 가장 조심했던 부분이 낙상이었기에 그런 꿈을 꾸지 않았나 싶다. 시아빠 말로는, 뇌종양을 앓던 동네 누구누구가 한 번 낙상한 뒤에 그대로 말을 잃고 급격히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실제로 당신도 혼자 길에서 쓰러진 뒤에 원인 모를 통증증후군이 생겨 몇 주간 고생한 바가 있었다.
한번은 침대에 있던 당신을 일으켜 휠체어에 옮기려는데 간질이 왔다. 간질이 오면 몸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고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뒤로 넘어가기에 술 취한 사람만큼이나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내려놓으면 바로 바닥이라 허리에 힘을 꽉 주고 끝까지 버텼다. 그 순간 내가 당신을 놓쳐서 떠나보내게 되었다면 나는 나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에게 보호자가 적어도 둘 이상 필요했던 이유는, 초반에만 해도 기운이 좋던 당신이 자꾸만 침대 밖으로 몰래 빠져나왔다가 넘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옆에 붙어서 당신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병원에서도 어지간히 말을 안 들어서 한밤중에 몰래 화장실을 가려다가 바닥에 대 자로 뻗어 간호사에게 발견되기도 하고, 자꾸 소변줄을 손으로 잡아 뽑으려는 시늉을 하고, 링겔 줄을 깔고 자서 침대를 피바다로 만들어놓기도 했다. 예전에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당신과 함께 보면서 “장혜영 씨 같은 열린 사람도 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볼 수는 없나 봐. 되게 아기 다루듯이 대하네”라고 이야기했는데, 막상 나도 그 상황에 처하니 어쩔 수 없더라. 자꾸만 화장실에 혼자 가서 볼일을 보겠다고 우기는 당신을 매번 어르고 달래고 혼도 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언젠가는 자꾸 침대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걸 방지하기 위해 붕대로 끈을 만들어 침대 위쪽을 묶어놓기도 하고, 베개들로 침대 주변에 성벽을 쌓아놓기도 했다. 그렇게 안전장치를 설치했어도 자는 사이에 사고가 생길까봐 불안해서 내가 당신이 누운 환자용 침대 바로 아래에서 잤다. 혹시 낙상해도 내 몸 위로 떨어지면 당신이 덜 다칠 테니까.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 침대에 묶여 있는 아들을 본 시엄마는 한참 울었다고 한다. 시엄마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면 미안해진다. 나도 원해서 만든 장면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그를 가두어놓은 건 나니까. 나중에 시엄마는 예쁜 천을 이용해 새로 만든 끈을 택배로 보내주었다. 끈이 예쁘면 마음이 조금 덜 아프셨을까.
언젠가 병간호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똑같은 순간이 온다고 해도 이보다 잘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자찬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당신을 병간호해야 하는 순간이 다시 온다면 나는 침대에 묶인 그 인정 없는 끈을 풀어버리고, 대신 내 두 팔로 당신을 꼭 끌어안고 잠을 청해볼 것 같다. 당신이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꼬집어서 잠을 못 자겠다고 투덜대지 않고, 자꾸 몸을 흔들어서 자리가 좁다고 불평하지 않고 작은 침대에 엉겨 붙어 함께 잠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