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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Nov 10. 2022

두려움, 그까짓 게 뭐라고

감정이 말을 걸다 #하나

피아노 콩쿠르는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콩쿠르 자체가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라면 한 번은 나가줘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었겠지만, 학교 숙제와는 다르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부끄럼이 많아서가 아니다. 콩쿠르에 나갈 정도의 실력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나선다 해도 뒤로 빼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콩쿠르는 다른 차원 아닌가? 경쟁자들과의 한 판이며 트로피를 받아야 하는 자리이다. 콩쿠르에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지만 단어에서 주는 위협적인 느낌에 주눅이 들게 되는…


아빠는 상을 받으면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상만 받게 된다면 피아노도 생기고 실력도 인정받고 어쩌면 유일한 꿈이었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절호의 기회! 하지만 부가적인 이득이 많아질수록 부담은 커졌고 콩쿠르는 단순한 대회 참여가 아닌 얻어낼 것이 많은 쟁취의 대상이 되어 갔다.


시간이 갈수록 콩쿠르에 나가는 게 두려워졌다.

아무리 피나는 연습을 한다 해도 두려운 대상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며, 트로피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어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단지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때문만이 아니라 두렵다는 게 뭔지 아는 나는 피아노 앞에 앉는 게 무서웠다.


‘틀리면 어떡하지?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상을 못 받으면 창피할 텐데…’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걸 피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았다. ‘가온 도’를 못 찾는 아주 기발한 방법을!

일부러 그런 게 절대 아니다. 그렇게 되어진 것이다. 콩쿠르 무대 위에서 나는 멍하니 가온 도만 찾다가 시간을 흘려보냈다. ‘가온 도가 어딨지? 여긴가? 저긴가? 이 음이 아닌데?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결국 한 음도 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뒤에 일렬로 앉아 있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다시 앉아 치라고 했다. 그대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 후의 기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피아노 앞에서 나는 왜 그랬을까?

암보를 하고 눈을 감고도 칠 정도로 연습했던 곡이 왜 생각나지 않았을까?  아니, 곡 자체도 아니고 시작음을 잊어버리다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두려움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 후에 벌어질지도 모를 끔찍한 일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끔찍한 일이라고 해봤자 음을 잘못 치는 실수를 하거나, 다음 구절이 생각나지 않거나, 상을 못 타거나, 상을 타지 못해 아쉬워하거나였을 텐데…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이, 너무 멀리 내다본 것이다. 아빠에게 피아노를 사 달라는 구실이 없어지고, 실력도 탄로 나고,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할 거라고! 살면서 수없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작은 실수조차 용납이 안됐던 거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억눌렀던 울음보가 터졌다.

창피함인지 억울함인지 안도감인지, 정체 모를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어떻게든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정신줄을 놓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수를 하긴 했지만 상도 받았고 콩쿠르 이후 선생님께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 후 단 한 번도 콩쿠르에 나가지 않았다.

콩쿠르는 두려움이었고, 두려움은 나쁜 거니까 가까이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10년 동안 피아노를 치면서 피아노 전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불쑥불쑥 그 두려움이 밀려왔고, 콩쿠르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친다는 행위마저도 두려움이 되어 버렸다. 결국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했다. 콩쿠르에 나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을 보면 멋있고 부럽긴 했다.


그들은 그 두려움을 어떻게 감당했던 걸까?

두렵지 않았던 걸까?

심사위원과 경쟁자가 없는 곳에서 피아노와 나, 그리고 음악만 있었다면 달랐을까?

타인의 시선,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고 음악과 혼연일체가 가능했다면 피아니스트가 됐을까?


30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피아노를 치고 싶다.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고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좋아했던 마음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사람 앞에서 경쟁하듯 쳐야 하는 자리가 두려웠던 것뿐!



두려움은 두려운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일 뿐이며, 더군다나 피아노 자체가 두려움도 아닐뿐더러, 두려움이라 해도 이제는 감정의 하나로 받아들여보자는 마음이다.



조만간 피아노를 다시 쳐보려고 한다.

피아노를 치며 느꼈던 즐거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행복감, 많은 생각들을 잊게 하는 그 순간이 주는 황홀함을 다시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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