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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당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다 알고 있다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by 다시봄

사람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과 신경을 많이 두는 편이다.

그런 나를 보고 주위에선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그냥 그러려니 해.“라고 예민한 사람 취급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그 내면이 궁금하고 파헤치고 싶다.

이게 작가의 본능이라면 내게도 타고난 게 있는 걸까?





좋은 스토리텔링은
좋은 심리학과 좋은 신경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을 깊이 탐색한다.

문학적 스토리텔링은
표면에 드러난 행위보다는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관한
폭넓은 단서를 배치하는 작업이다.*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그 사람만의 독특한 특징을 집어낼 수 있다.

그 독특함을 장난처럼 흉내 내거나 끄집어내어 그에게 일러주면 그는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처럼 잘 아냐며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보인 관심에 기뻐하며 더 깊숙한 내막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써먹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고 탐색하고 소통하는 작업은 글을 쓰는 내게 소중한 자산이 된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고 싶은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남자 A가 있다고 하자.

A가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가 될 수 있다.


여자보다 부족한 게 많은 남자라서

고백하면 더 멀어질까 봐

좋은 건지 호감인지 불분명해서

엄마가 싫어하는 부류의 여자라서

고백해 본 적이 없어 자신의 서툼을 들킬까 봐

이별의 아픔이 어떤지 너무 잘 알아서 등등.


A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는 눈빛이나 행동만 봐도 대략 짐작할 수 있고, 그가 여자 곁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고 단 한마디만 던지면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좋아하면 고백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이 한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가,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고백을 어떻게 할지, 해도 될지를 의논한다. 의논하는 과정에서 그가 어떤 이유로 고백을 망설이는지, 그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A와 나의 본격적인 상담 작전이 펼쳐진다. 그는 묻고 싶고 궁금한 게 많아 나를 계속 찾게 되고 나와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여자는 사실 A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와 친해진 그에게 급 관심을 보이며 질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자도 호감이 있었던 게 맞다면 예외 없이 그녀는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그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A는 그 사실에 기뻐하며 또 나를 찾아오고, 그럴수록 여자의 마음은 깊어진다. 그리고 결국 A가 고백하기도 전에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A에겐 더없이 좋은 경사가 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찰과 관심은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어주기도 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게 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물론 그게 다 들어맞지는 않지만 대개는 오차 범위 안에 든다.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 그를 파헤치고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내게 재미이고 기쁨이며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나만의 심리적, 문학적 도구이다.





오늘의 타깃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보이지 않는 이유’를 주렁주렁 매단 채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그는 오늘부터 나의 연인이다.

보이지 않는 이유가 보일 때까지 추적 관찰하게 할 먹잇감이다.

“어서 와서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유를 알려주세요. 궁금해 미치겠다고요!“





*윌 스토, <이야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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