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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읽을 자유가 있는 한 어두운 문학은 있을 수 없다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by 다시봄

어떤 글이 됐든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누군가에게 무거운 짐이 되거나 어두운 기운을 드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글을 공유하는 일에 멈칫하게 된다.


나만 알아도 되는 일이 아닐까? 나만 슬프고 아프고 어두웠다가 다시 털어내고 밝게 일어나면 될 일을 괜히 읽는 이들까지도 같은 어둠에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하지만 쓸 자유와 읽을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쓰든 그 글을 찾아 읽는 독자가 있다면 작가와 독자 모두 서로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어떤 글이든 쓸 자유와 어떤 글이라도 읽을 자유.





예술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든 간에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신뢰의 행위다.

<어두운 문학>이란 있을 수 없다.
세계를 아무리 어두운 색조로 그린다 해도
그 묘사는 오직 자유로운 인간이
그런 세계 앞에서
자신의 자유를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내게 있었던 암흑기를 꼽으라면 재작년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다.

회사의 위기가 조직에 그리고 각 개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1년.

회사는 흥하면 직원을 모른 척하고 경영이 어려우면 직원을 제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안 그런 회사도 일부 있다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대부분의 회사와 같았다. 모든 걸 직원이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이 어처구니없었지만 경영주가 주는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일개 직원은 함부로 앞장서 시위할 입장이 못됐다.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자 전 직원의 40%를 인원감축했고 임금도 대폭 삭감했다. 회사는 수익이 뚝 떨어졌으니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다고 강조했지만, 수입이 없다고 직원들이 바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해고된 직원이 했던 일까지 떠맡아야 했고, 그 스트레스가 1년을 가는 동안 일상을 잃어갔고, 그 와중에 회사는 어떻게든 지출을 줄이기 위해 소소하게 있던 복지까지 모두 앗아갔다. 출근길은 노예에 팔려가는 길처럼 끔찍한 악몽이었고 퇴근길은 항상 어두운 밤이었다. 시키는 일만 하는 일개미가 어떤 건지 실감하는 시기였다.


당시 심리학 강의를 듣고 있던 나는 <생각과 느낌의 사회학>이라는 수업 최종 과제로 세미 논문을 제출했다.

논문의 제목은 <위태한 회사에 위대한 직원은 없다>이다. 부제는 ‘회사의 인력감축이 직원의 직무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였다.

내가 얼마나 회사가 직원을 대하는 태도에 반감을 갖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논문의 결론 한 문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위태한 회사가 위대한 회사가 되려면 퇴사 직전의 한계 상황에 몰린 직원들을 일개미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해야 할 것이다.”


당시에 발행했던 브런치북 <퇴사를 퇴사할 수 있을까>​는 지금 읽어봐도 어둠의 기운이 가득하다.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위태한 현실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퇴사 직전까지 갔던 나는 팀장의 헛된 약속을 믿고 지금에 이르렀다. 달라진 게 없는 회사지만 이제는 익숙해지고 능숙해져 어떤 것에 눈 감아야 하고 어떤 것에 중심을 둬야 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애사심으로 다니는 회사가 아니라 월급 받기 위해 다니는 회사로 전락(?) 한 것이다.



퇴사만 생각하는 회사원이라는, 누구는 공감하고 누구는 박수 쳐주지 못할 현실을 글로 쓰며 고난의 시기를 이겨낸 나는 그 글을 쓴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단 몇 명이라도 내가 쓴 어두운 글에 공감해 주었다는 것에 힘을 얻어 다음 글을 쓸 원동력이 됐다.

내가 어떤 글을 쓰든 그것을 읽을 자유는 독자에게 있고 그런 독자가 있으니 나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너무 당연하고 본질적인 이유로 글 쓰는 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두운 문학이란 있을 수 없다.

쓸 자유를 가진 작가와 읽을 자유를 가진 독자가 있는 한.

어두웠던 시기를 지나며 쓴 글과 그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준 독자들을 통해 알게 된 고마운 진실이다.





*장폴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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